문재인 정부는 2017년의 대선 공약으로 ‘고교학점제로 진로 맞춤형 교육 추진’을 내세웠다. 박근혜 정부가 2015 개정 교육과정을 고시하여 2018학년도 고등학교 입학생부터 적용할 예정이었고, 이 학생들이 치를 2021학년도 대입에서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 전형의 모습을 두고 논란이 있었던 시기에 새로운 이슈를 꺼낸 셈이 되었다.

고교학점제는 2018~21년에 도입 기반을 마련하고, 2022~24년 부분 도입하여 2025년에 본격 시행하는 일정을 잡았었다.


2015 개정 교육과정과 고교학점제(2022 개정 교육과정)는 선택형 교육과정이라는 점에서 다르지 않다. 선택형 교육과정은 2002학년도에 고교에 처음 적용된 제7차 교육과정에서 본격화되었으니 이제 20년도 넘은 교육과정 운영 방식이다. 단지 선택의 모습이 시간이 지나면서 확대되었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그러니 고교학점제가 되어 선택이 문제라는 주장은 고교학점제의 문제라기보다 선택이 문제라는 점에 국한된다.

학생이 고등학교에서 배워야 할 과목은 일반고에서 주로 편성하는 과목이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특목고 교육과정도 보통교과로 편제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고에서는 2015 개정 교육과정에서의 보통교과까지 배우면 된다. 일반고 교육과정에서 수학과 과학 과목은 특히 위계가 있어 어려운 과목이 있고 이 과목까지는 배워야 대학 가서 대학 공부를 원활히 하게 된다. 그러므로 주당 29시간, 6개 학기 동안에 배워야 할 과목은 대부분 정해져 있고 일부 과목을 선택하게 된다. 1학년 때는 공통과목으로 채워지고 2학년에서는 수능 과목으로 채워지며 일부 과목만 선택의 대상이 된다.

그런데 애당초 고교학점제는 ‘진로 맞춤형’이라는 전제를 달았고, 대학은 진로 탐색을 중시하는데, 현재는 추천서, 자기소개서도 없고 학생부도 많은 내용이 대학에 전달되지 않아 학생이 선택한 과목이 입시에서 중요한 평가 요소가 된다는 점이 과목 선택에 부담이 된다. 여기에 대학이 전공자율선택제로 신입생을 선발하는데 진로를 미리 정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는 점이 덧붙여진다. 그래서 진로를 중시하는 진로 맞춤형 교육과정인 고교학점제는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모든 학생이 보통교과 수준의 과목을 공통으로 배우던 시기가 있었지만, 그때도 문・이과를 나누고 이과는 문과에 비하여 어려운 수학과 어려운 과학을 배웠다. 현재 사회상을 보면 문・이과를 통합할 필요가 있다고 한다면 문과로 통합되기보다 이과로 통합되어야 한다고 할 것이다. 사회는 수학・과학 과잉 학습 시대로 변해가고 있다. 이런 사회에서 선택 없이 공통으로 배운다면 모든 학생은 미적분Ⅱ, 역학과 에너지, 전자기와 양자, 물질과 에너지, 화학반응의 세계, 세계사, 세계시민과 지리 등 많은 학생이 어려워하고 기피하는 과목을 공통으로 배우게 하자고 할 것이다.

상위권 대학이 학종 전형에서 학생이 이수한 과목을 평가할 때 중시하는 과목을 보면 – 이 과목들은 핵심권장 또는 권장 과목이라는 제목하에 이수하도록 안내하는 과목이다. - 위에 든 과목과 같은 위계의 과목들이다. 그나마 선택이 제공되므로 이들 과목 중 일부 과목을 선택하지 않을 자유를 갖게 된다. ‘나는 역학과 에너지는 못하겠어.’라고 확정하면 이 과목이 기초가 되는 진로를 선택하지 않거나 선택하지 못하게 될 뿐, 대학에 못가는 것은 아니고, 역학과 에너지를 배우지 않아도 되는 진로를 찾아보게 된다.

혹시 나중에 이 과목이 필요한 진로로 가고 싶다면 어떡하냐고 하지만, 학생이 못 하겠다고 판단한 과목은 적성에 맞지 않거나 위계가 높은 과목이고, 진로를 바꾸는 경우는 대부분 어려운 공부를 하는 진로에서 쉬운 공부를 하는 진로로 바꾸는 경우가 대부분이라서 진로를 바꾼다고 문제가 되는 경우는 드물다.

전공자율선택제로 학생을 선발할 때도 무엇을 하고 싶어서 무엇을 선택했는지는 중요한 평가요소이다. 대학은 ‘무엇을 간절히 하고 싶은’ 학생을 선발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진로가 특정 모집단위에 국한되지 않고 여러 학문 분야에 걸쳐있어서 학과를 선택하기 어려운 학생이라면 전공자율 모집단위로 와서 공부를 할 기회를 주는 방식이 대부분이다. (서강대처럼 진로를 중시하지 않는다는 대학도 있다.) 그래서 학과 모집에서는 진로를, 전공자율 모집에서는 자기주도적 선택 또는 다양한 경험을 중시한다고 대학이 말하고 있다.

고교학점제와 진로, 고교학점제와 선택을 학생의 입장에서 보면 불합리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시험 범위가 많다, 쉬는 시간에 교실을 옮기니 잠을 잘 수 없다 등이 학생의 불만이기는 하다. 그렇지만 학교가 다양한 과목을 개설해야 하고 학기 집중 이수로 교과 교육과정을 편성해야 해서 생긴 어려움은 보완해야 한다. 그렇지만 제7차 교육과정 이후 학기당 이수과목을 줄이기 위해 노력해 왔는데, 그 이유가 주당 수업시수가 적당히 확보되어야 학생 참여 수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둔 것이고 보면 교수학습 개선에 필요한 주당 시수 확보와 이수 평가를 위한 학기 이수제의 도입은 관계없는 두 요소가 보완적 위치를 갖게 된 것이라서 이에 따른 이의 제기로 다시 학년 이수가 될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인다.

그렇다면 개선점은 수능 관련 문제, 학교 성적 산출에서 상대평가 문제 등과 수업 지원, 행정 지원 등에 있지 교육과정 자체에 있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