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의 큰 특징은 과목선택제, 미이수제, 교수・학습 개선이다. 이 중 과목 선택제는 2002학년도에 고등학교 입학한 학생들부터 적용된 제7차 교육과정 때부터 적용되었던 제도라서 이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가 되었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그런데 고교학점제에서 ‘진로에 따른 과목 선택’을 강조하다 보니 진로를 정하기는 어려우니 과목선택제도 재고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즉 고교학점제를 폐지하자는 주장에 과목선택제 폐지도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선택형 교육과정은 제7차 교육과정 개정의 발판이 된 5・31 교육개혁 때 우리 교육과정이 국가가 일방적으로 학생의 의사를 무시하고 제공하는 싸구려 교육과정으로 규정하고 제7차 교육과정을 선택형 교육과정으로 개정한 데서 시작되었다. 이어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으로 개편한 2015 개정 교육과정 때, 선택의 의미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관련 연구에서는 학생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는 것은 개인성을 존중한다는 의미이며, 과목 선택을 통하여 선택 역량을 길러주고, 선택을 통하여 학생은 다른 학생과 다른 개인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며, 원하는 학습을 하므로 학습 효율성이 높아진다고 분석했다.
선택형 교육과정 이전에는 문・이과가 나뉜 교육과정을 운영했었다.
1991학년도 일반고의 교육과정을 보면 2학년 때부터 문・이과를 나누었는데, 이는 과목선택 이전에 계열을 선택하는 방식이었다. 자연계를 선택하면 물리, 화학, 생물, 지학을 배우게 되고, 수학을 좀더 많은 시간 배우게 된다. 시간만 많은 것이 아니고 내용도 좀더 어려웠는데, 예컨대 미적분Ⅱ 내용은 수Ⅰ에는 없고 수Ⅱ에만 있었다. 자연계 교육과정은 수학과 과학 전 과목을 배운다는 점에서 보면 현재 과학중점학급의 교육과정과 비슷하게 보인다. 또한 사회 과목도 정치경제, 한국지리, 세계사를 배웠다. 당시 고등학생이 현재 고등학생에 비해 학습부담은 컷을 것이다. 현재는 주당 수업시수가 29시간인데 당시에는 34시간이어서 과목이 많았다. 이런 편성을 두고 학생에게 문・이과 중 하나를 선택하게 한다면 학생은 어떤 선택을 할까?
과목 선택은 배우고 싶은 과목을 선택해서 배운다는 적극적 선택과 배우기 싫은 과목은 선택하지 않을 자유가 있다는 소극적 선택으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1991년의 교육과정은 이 표에 나와있지 않은 과목을 더 배우고 싶은 학생에게 기회를 줄 수 없었다. (물론, 대학 공부를 하는데 이 이상의 과목을 배울 필요는 없다. 즉 정수론을 더 배우고 싶은 학생에게 기회를 주지 못한다는 말은 아니다.) 한편 식품영양 분야를 공부할 학생은 물리를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데 물리 공부가 싫어도 그 시간에는 자리를 지켜야 했다.
그런데 고교학점제에서 진로를 고려하여 과목을 선택하라는 말은 대부분 수학에서 미적분Ⅱ와 기하 또는 과학교과의 일반선택과목과 진로선택과목 선택에 유의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선택이 없는 교육과정으로 바꾸면 1991학년도 입학생의 교육과정 형태가 될 것이다.
과거 교육과정으로 돌아간다면 학교는 자연계 교육과정만 운영하게 될 수도 있다. 고등학교 간의 입시 경쟁이 과열되면 자연계과정으로 모든 학생이 이수하는 것이 입시에 유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의 선택 없는 교육과정으로 돌아갈 수는 없을 것이다. 세계적으로도 선택교육과정이 일반적이며 사회도 이미 한 가지 길을 따라갈 수 없게 변했다.
이미 루카치가 소설을 이론에서 갈파한 대로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에 해당하는 시대는 아주 먼 과거가 되었다. 현대사회의 특징은 한 마디로 VUCA(Volatility(변동성); Uncertainty (불확실성); Complexity (복잡성); Ambiguity (모호성)) 라 하지 않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