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시험을 보고 나자 원점수를 바탕으로 한 예상 합격선이 보도되었다. “서울대 경영대학은 전년도와 동일한 284점 수준에서 합격선이 예측되었다....연세대 경영학과는 전년 대비 1점 상승한 280점으로, 고려대 경영학과는 3점 상승한 280점으로 예측됐다....종로학원은 서울대 화학생물공학부 275점, 첨단 융합학부 273점 등으로 예상했다.(한국대학신문)” 같은 기사이다.


수능 성적의 총점 누적 분포를 발표하지 않은 것은 2002학년도 수능부터이니 이미 20년이 지났다. 계열별 누적분포를 발표하지 않기로 한 것은 수능에 의한 한 줄 세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이라고 했었다. 당시 교육 당국은 “기존의 진학지도는 주로 수능성적 총점에 의한 배치기준표에 학생의 성적을 대비시켜 맞추어 나간 것에 불과하였으나, 앞으로의 진학지도는 우선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하고 학생이 지원하고자 하는 전공분야 등으로 진학을 유도하는 진로지도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라는 해설 자료를 2000년에 내었다. 또한 “향후 수능 총점 자체를 주요 전형 기준으로 사용하는 대학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했다.

그렇지만 올해뿐 아니라 2002학년도 대입에서도 수능이 끝난 뒤 언론보도를 보면 어느 대학-학과가 총점 몇 점이 합격선이 될 것이라는 예측을 했다. 수능 점수가 실제 입학에 쓰일 때는 총점이 사용된다는 뜻이다. 그런데 대학은 총점 성적 순으로 사정을 하기 때문에 몇 등이면 어느 대학 어느 학과에 간다고 예측이 된다. 작년에 9천 등에 간 대학은 올해도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9천 등이면 합격할 수 있다고 예측할 수 있다. (특별한 이유란 주로 선호도가 갑자기 높아지는 경우이다. 방송에서 호텔 관련 드라마가 인기가 있는 해는 호텔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그에 따라 호텔경영학과 합격선이 높아진다. 대학 자체의 선호도가 높아지는 경우도 있다. 학문적 업적이 좋아져서, 취업이 잘 된다는 사실이 알려져서, 재단 분규에서 벗어나 대학 운영이 안정이 되어서 등의 이유로 선호도가 높아지기도 한다.)

그런데 작년 9천 등에 해당하는 점수가 원점수로 279점이었는데 올해 이에 해당하는 점수가 몇 점인지는 총점 누적분포도가 없는 상태에서 개인은 알 수 없다. 학교도 알기 어렵다. 그러니 원점수를 가지고 합격선을 예상하는 일은 신뢰도가 높다고 보기는 어렵다. 누적분포를 모르는 상태에서 경향을 보고 예상한 대강의 추정치이기 때문이다.
수능 채점이 끝나도 누적분포는 발표되지 않는다. 누적분포를 발표했던 때에는 각 학교가 자기 나름의 배치표를 만들었지만 지금은 근거가 없으므로 학교가 몇 점이면 어느 대학에 갈 수 있는지를 판단하기 어렵다. 그러다보니 사교육에서 만드는 배치표에 의존하게 된다. 사교육도 실제 누적분포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아마도 통계적 방법으로 추정해서 만들 것이다.
또한 실제 입시에 사용할 누적분포를 만든다면 당연히 표준점수 총점으로 만들어야 한다. 대학에서 사정할 때 사용하는 점수는 대부분 표준점수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원점수의 국어, 수학, 탐구 성적을 합한 성적이 280점일 때 이 점수가 표준점수로 바뀌면 다양한 점수가 된다.

2025 수능의 경우 사회탐구 두 과목을 각각 45점 맞았다고 할 때, 추청한 바로는(표준점수 몇 점이 원점수 몇 점에 해당하는지는 발표하지 않아서 원점수와 표준점수 관계를 알 수는 없다.) 생활과 윤리와 사회문화를 선택한 학생은 각각 72점과 65점으로 137점을 맞았는데, 세계사와 경제를 선택한 학생은 64점과 68점으로 132점을 맞았다. 같은 원점수라도 5점의 차이가 난다.

이 점수를 서울대는 그대로 반영했고 많은 대학은 백분위를 활용하여 변환해서 또 하나의 점수를 만들어 썼다. 그런데 변환하는 방식이 대학마다 달라 점수도 같이 달라진다. 여기에 영역별 반영비를 다르게 반영하니 자신의 성적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기 어렵다. 그래서 수능은 점수가 있으니 뻔할 것 같지만 수능점수로 지원할 때 합격 가능성을 예측하는 일은 어둠 속에서 먹물을 찾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래서 수험생 학부모가 되면 족집게 상담사를 찾는다. 정시 상담이 쉽다고 말하는 사람은 컴퓨터 상담 프로그램에 학생 성적을 넣고 합격 가능 대학을 골라주는 단순 작업을 최선이라고 믿는 사람이다.

수능이 공정하려면 실력이 좋은 학생이 높은 점수를 받고 실력이 떨어지는 학생이 낮은 점수를 받는 구조라여 한다. 그런데 수능도 운칠기삼이라고들 한다. 운이 70%를 차지한다는 말이다. 그 이유는 수능 자체에 있다. 과목 선택을 잘해서 높은 표준점수를 맞는 것은 수험생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문제가 쉽게 출제되는지 어렵게 출제되는지는 과목을 선택해서 원서를 낼 시기에는 모른다. 또 국어를 잘하고 수학이 좀 떨어지는데 국어가 쉬워서 좀 못하는 학생과 같은 점수를 받고 수학은 원래 떨어지므로 낮은 성적을 받아서 원하는 대학에 갈 수 없게 되었다면 한해를 더 견뎌서 다시 수능을 볼 수밖에 없다. 이렇게 된 상황의 귀책 사유가 수험생 본인에게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다. 한편, 수능시험을 못 보면 자신이 공부를 덜해서 그렇다고 생각하고 잘 보면 잘해서 그렇게 된 줄 아는 것도 신기한 현상이다.

2028 수능은 선택과목을 없애고 동일한 시험을 보니 선택에 따른 유불리 문제는 줄어들 것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영역별 난이도에 따른 유불리는 없어지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수능을 잘 보기 위한 학습은 학교를 무력화한다는 것이다. 수능은 학교 공부와 밀접하지 않다. 수능 영역에서 국어, 수학, 영어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을 뿐 아니라 대학이 반영할 때에는 탐구 두 과목 중 한 과목만 반영하기도 하여 국수영 비중을 더 높인다. 고른 학습은 물건너 가고 학습 방식도 오답을 지워 정답을 고르는 문제풀이에 그친다.

기본 개념과 원리를 적용하여 탐구를 통하여 지식을 내면화해야 하고 발표하고 성찰하는 방식으로 깊이 있는 학습을 하게 지도하라고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는 규율하고 있지만 교실은 수능 고득점을 향해 마치 운전면허 예상문제 풀고 필기시험 준비하는 방식으로 돌아가고 있다.

이는 수능 고득점을 맞기 위해, 한 문제라도 안 틀리기 위해서는 국가교육과정에서 제시한 학습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공부해야 좋은 성적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EBS 수눙 방송 문제로 기본적으로 맞아야 할 것은 맞아야 하고, 더 어려운 문제는 학교에서도 다루어주지 않으니 사교육에 의존하는 방식은 학생의 역량을 길러주어야 할 교육이 학생을 생각하는 존재에서 답을 맞추는 기계로 전락시킨다.

시험문제의 어렵고 쉬움에 따라 성적이 달라지고 유불리가 생기는 수능은 공정한 시험인가?

수능에 의한 한 줄 세우기를 막기 위해 누적분포를 알려주지 않는다면서 점수에 따른 한 줄 세우기인 정시 확대를 강제하는 것은 상식적인가? 교육 당국은 ‘수능 총점 자체를 주요 전형 기준으로 사용하는 대학’을 줄이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앞으로라도 하려고 하는가?

2028 대입을 발표한 경희대는 정시에서 수능만으로 선발하는 인원을 30% 정도 배당할 계획이라고 한다. 4천명을 선발한다면 그 중 40%를 정시에 선발하고 40% 중 30%를 수능만으로 선발하니 500명 정도만 수능으로 선발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서울대는 정시에서 정원의 30%를 선발할 수 있게 되었는데 1단계에서는 등급만 사용하고, 2단계에서는 백분위를 사용해서 선발하므로 각 영역을 만점 맞기 위해 필사의 노력을 하지 않아도 되는 방향으로 전형을 설계한다고 발표했다. 대학이 먼저 이상한 수능을 조금만 사용하려는 노력으로 공부에서 수능 공부 비중을 줄이려고 하고 있다. 아마도 고등학교 교육이 바로 되어야 대학이 선발하고 싶은 학생이 늘기 때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