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입학사정관의 공부법 (74) - 고교학점제는 추진될까?(1)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코로나 시대의 공부법"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저자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2.05.02 15:49 의견 0

개념을 정의해 두어야 논의가 가능하다. 환경에 대하여 토론하면서 누구는 대기를, 누구는 숲을 두고 얘기하면 결론에 이를 수가 없다. 그렇지만 현실에서는 정의를 내리지 않고 목소리를 높이는 경우가 많다. 고교학점제 역시 정의되지 않은 상태로 접근하면 논의가 거칠어진다.

선택과목 운영 측면


고교학점제는 2017년 11월 교육부가 발표한 ‘고교학점제 추진 방향 및 연구학교 운영 계획(안)’에서 처음 제시된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 정책이다. 당시 발표한 문서에서는 고교학점제의 기본 개념을 ‘진로에 따라 다양한 과목을 선택・이수하고, 누적 학점이 기준에 도달할 경우 졸업을 인정받는 교육과정 이수・운영제도’라고 제시했다.

이어 교육과정은 ‘이수 단위를 학점으로 하여, 학력(자격) 취득을 위한 총 이수학점・필수 이수학점 등 제시’하는데 ‘영역 선택형은 사회・교양・예체능 등 영역별 선택이 필요한 분야의 경우, 과목군 내에서 다양한 과목을 개설하고, 단계 선택형은 전문자격 과정 및 수학・과학 등 위계성이 강한 과목으로, 난이도・학습량 등에 따라 단계를 구분하여 다양한 과목을 개설’한다고 덧붙였다. 평가제도는 ‘학점 취득을 위한 과목별 성취기준 설정 및 수업 중 이루어지는 교사별 평가, 과정 평가의 안착이 필요’하다고 하였고, 졸업제도는 ‘출석 일수를 기준으로 하는 학년 단위 진급・졸업이 아닌 학점을 기준으로 양적・질적 졸업요건을 설정’한다고 했다.

그러고 보면 고교학점제의 핵심은 ‘선택형 교육과정으로 운영하고 평가는 성취평가제(절대평가)로 하며, 출석 이외에도 졸업요건이 있는 제도’라고 하겠다. 그런데 선택형 교육과정은 2002학년도 고등학교 입학생부터 적용한 제7차 교육과정부터 운영해 온 사항이라 지난 20년 간 운영되어 온 방식이고, 성취평가제 시도도 계속 있어온 일이다. 과목 이수에 성공했는지를 출결 이외의 요소를 반영하여 평가하는 제도 역시 낯설지는 않다. 여기에 고교학점제 운영이 원활하게 되도록 환경을 개선하는 사업 역시 교과교실제를 위한 환경 개선 사업으로 10년 전부터 이어오고 있는 지원 사업이다.

그렇다면 이 사항들을 묶어 고교학점제라고 이름을 붙이는 것이 과연 효과적인지는 논의의 대상이 된다. 낯익은 사항들을 묶어 낯설게 하면 쉽게 받아들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논란은 여기서 출발한다. 요소들은 낯익은데 이름이 낯설어 개념 합의가 어렵게 된 것이다. 선택형 교육과정의 경우, 2015개정 교육과정과 같은 방식의 선택형 교육과정이 2022개정 교육과정에서도 이어진다. 그러니 고교학점제형 교육과정이 아니라 2022개정 교육과정으로 발표되었다. 고교학점제 명칭을 쓰지 않아도 교육과정은 개정할 수 있다.

2015개정 교육과정 이후에 세계는 급격히 달라지고 있고 불확실성은 더 커지고 있다. AI와 코로나팬데믹은 2015 이전에는 심각하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학생이 배워야할 과목과 내용이 달라질 필요가 생겼다. 그렇다고 학생이 선택할 과목이 2015개정 교육과정과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전망이다. 혹자는 크게 달라질 것으로 전망한다. 여기에서 논의의 차이를 보인다. 선택과목이 너무 많아져서 학교가 감당할 수 없으니 고교학점제는 미뤄야 한다는 주장은 현행 교육과정과 선택과목 면에서 크게 달라질 것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그러나 공통과목은 모든 학생이 이수해야 할 과목이고 선택과목 중 국어, 수학, 영어의 일반 선택과목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대부분 학생이 선택하게 될 것이다. 진로 선택과 융합 선택과목은 일부를 학생이 선택하게 될 것이다. 과학과 사회 과목도 통합사회 1, 2 통합과학 1, 2와 과학탐구실험 과목을 포함해서 8~10과목을 수강하게 될 것이다. 여기에 디지털 관련 과목과 제2 외국어·한문 과목, 체육·예술 과목까지 포함한다면 학생이 지금까지는 이수가 불가능했던 희망 과목을 배울 수 있는 기회는 한 학기에 한 과목 정도에 불과하다.

국어과목 내에서도 어떤 과목을 선택해야 할지를 결정해야 하므로 선택이 많다고 할 수는 있지만 2015개정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동안 이 정도의 선택 결정은 이루어져 왔던 것이므로 이를 논의에 대상에 넣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 필수이수단위가 작으므로 국어, 수학, 영어 과목도 최소로 이수하고 독특한 선택과목을 희망한다면 학교 교육과정을 운영할 수 있을까 우려하기도 한다. 개정안에서는 이 과목들이 필수이수단의는 공통과목의 이수단위와 같다. 즉 극단적인 경우 공통국어, 공통영어, 공통수학만 이수한 뒤 선택과목은 전혀 이수하지 않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2022개정 교육과정에서 기초 소양을 언어소양, 수리소양, 디지털소양으로 제시하고 있는바, 2022개정 교육과정을 적용한다고 해도 이 과목들의 학습량이 최소화될 것으로 전망하는 것은 무리다. 대부분 학생의 3년간 성적표에 국어, 수학, 영어 과목이 한 과목이라고 없는 학기를 상상할 수 있을까? 또 지난 4년간의 연구·선도학교 운영에서 그렇게 결과를 낸 학교 사례도 없다.

고교학점제에서는 학생이 희망하는 과목을 학교가 편성하는 경우, 학교 간 편성하는 경우,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경우, 지역사회 교육과정으로 운영하는 경우에서 선택 이수할 수 있게 하겠다고 하며, 연구·선도학교의 경우 학교 내 교육과정보다는 학교 밖 교육과정에서 더 많은 선택권을 확대하려는 방식은 재고할 필요가 있다. 학교 밖이 더 강조되면 학교의 역할이 무엇일지를 다시 생각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개정 교육과정에서 크게 달라진 과학Ⅱ 과목의 개정 방안은 그 동안 필요성이 논의되어 왔던 것이므로 새로 선택 방향을 안내하면서 문제점이 없도록 해야 하겠지만, 융합 선택의 많은 과목 등이 정말 국가 교육과정으로 제공될 필요가 있는 과목들인지, 교육과정 자율권은 얼마나 부여하는 게 좋을지는 검토를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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