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입학사정관의 공부법 (75) - 고교학점제는 추진될까?(2)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코로나 시대의 공부법"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저자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2.05.09 18:02 | 최종 수정 2022.05.09 18:03 의견 0

교육의 결과 패배자를 만들면 안 된다. 그런데 시험을 보면 서열이 생긴다. 미세하고 촘촘한 서열에서 윗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경쟁은 가히 동물적이다. 상대평가는 이런 점에서 지속적으로 문제가 제기되어 왔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1998년 교육부는 <새로운 대학입학제도와 교육비전 2002 : 새학교 문화창조> 계획을 발표했는데 학생부 교과는 절대평가(평어)와 상대평가(석차)를 모두 기록하기로 했고, 실제 입시에서는 수시에서 석차를 주로 반영했지만 대부분 학생을 선발하는 정시에서는 평어를 반영했기 때문에 대부분 학생이 최고 성적을 받도록 시험문제를 아주 쉽게 내는 상황이 생겼었다. 이른바 성적 부풀리기 현상이다.

2004년 노무현 정부는 문제가 된 성적 부풀리기를 해소하기 위해 성취도, 석차를 산출하던 방식에서 원점수, 과목평균(표준편차), 석차등급을 산출하는 방식으로 바꾸기로 했고 이후 이 방식은 현재까지도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이 방식의 문제점은 지속적으로 지적되어 왔다. 2011년 교육부는 2011개정 교육과정 고시와 동시에 고교 석차 9등급제 평가를 성취평가제로 전환한다는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을 밝혔다. 고등학교는 6단계 성취도(A-B-C-D-E-(F))를 기재하면서 ‘원점수/과목평균(표준편차)’를 병기하는데, 고등학교는 2014학년도 보통교과 전체 성취평가를 도입한다고 했다. 그러다 2013년 10월 <대입제도간소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성취평가 결과 대입 반영은 유예’하기로 했고, 2019학년도 이후의 성취평가 결과 대입 반영은 2015학년도에 결정한다고 했다.
2015년에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고등학교 보통교과 성취평가제 반영 방안을 2017년에 종합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다. 당시는 수시 특히 학생부종합전형(입학사정관제) 비중이 크게 늘어난 상황에서 절대평가 성적만으로는 평가하는데 문제 제기가 많아 절대평가 시행이 벽에 부딪혔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 2017년 8월에 <대입제도 개편 연기>를 발표하면서, 고교학점제, 내신 성취평가제, 고교교육 정상화 방안 및 대입정책 등을 포괄하는 ‘새 정부의 교육개혁 방안’을 2018년 8월까지 마련할 계획이라고 했고, 이후 성취평가제 관련 사항은 고교학점제가 도입되는 2025학년도부터 고등학교에 적용한다고 예고되었다. 2021년에 발표된 2022개정교육과정 시안에서는 공통과목을 제외한 선택과목은 성취평가제 5등급으로 평가한다고 선언했다.

이토록 계속 추진하겠다고 ‘선언하고 연기하는’ 일이 반복되는 이유는 상대평가의 문제점을 반드시 해결해야 하지만 동시에 절대평가만으로는 상대평가를 기반으로 한 대학입시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에서 몇 등, 전교 몇 등 같은 숫자는 집단 내에서의 성적 우열을 한 눈에 알 수 있는 도구다. 이 성적은 모든 입시 관문을 통과할 때 사용된다. 대학은 모집단위별로 정원만큼만 뽑아야 하므로 철저하게 상대평가를 한다. 입학전형에 필요한 성적이 상대평가 성적이면 대학은 공정성 시비로부터 자유롭다. 예컨대 수능으로 대부분 신입생을 선발하던 때에는 수능 점수 전국 누적분포를 발표했다. 학생은 자기 성적이 이과에서 전국 9천등이면 연세대 공대를 지원하였고 대학은 정원만큼 성적순으로 뽑으면 되었다. 이런 한줄 세우기 성적순 선발은 단순하지만 개개인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문제점이 크다.

한편, 상대평가는 자신의 위치를 알고 도달점 목표를 정해 노력하면 원하는 대학에 입학할 수 있으므로 일견 동기부여에도 도움이 되는 제도로 인정되기도 한다. 반면 협력 학습이 필요한 시대에 친구가 경쟁 대상인 상황이 형성되고, 인성 함양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문제점이 지적된다. 특히 지금의 인성은 나눔, 배려, 협력, 리더십 등의 덕목을 말하므로 상대평가는 더욱 현대적 의미의 인성 함양에 역행한다.

그뿐 아니라 교육의 목표는 학습역량 제고에도 있는데, 상대평가는 인성 함양뿐 아니라 학습역량 제고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학생은 학년이 올라갈수록 학생은 좀 더 어려운 과제를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학습 역량을 기르게 되는데 상대평가는 성적 따기 쉬운 과목, 자기보다 학업 역량이 뒤떨어지는 친구가 많은 과목을 선택해서 공부하므로 학업역량을 기르는 데 필요한 공부를 외면하게 된다. 즉 고등학교에서 미적분, 물리학, 화학, 세계사, 윤리와 사상, 경제 등의 과목은 수강 신청자 수가 매우 적어 고등학생의 학업 역량이 문제가 된다.

그런데 학생은 불확실한 미래를 살아갈 때 전대미문의 상황을 창의적으로 헤치고 나가야 하므로 도전 정신을 발휘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그러다 보니 도전정신과 대체불가능한 역량을 기르는 일이 중시되게 되었다. 국가는 학생이 도전하는 데 꺼릴 요소를 제거해 주고 있다. 중학교 자유학기제 때에는 학생이 어려운 과목이나 활동에 ‘도전’하도록 장려하기 위해 숫자로 된 성적을 산출하지 않는다. 고등학교에서는 2019년 입학생부터는 진로선택과목을 성취도를 A,B,C 3단계로 산출해서 대학에 제공한다. 학생이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도록 경쟁을 완화하는 방식을 택한 것이다. (3단계 성적은 동점자가 많으니 입시에 쓰려면 좀 더 차별적인 정보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원점수와 평균, 수강자수를 추가로 제공하고 있다.)

고교학점제에서는 학생이 성적에 연연해하지 말고 원하는 과목을 도전정신을 발휘해서 선택할 수 있도록 선택과목은 성취평가제(절대평가)로 한다고 발표했다. 고교학점제라서가 아니라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과목을 성적 눈치 보지 않고 도전적으로 선택해서 학업 역량을 기를 뿐 아니라 남과 다른 자질을 길러 대체불가능한 탁월한 역량을 기르도록 지원하려면 성취평가제는 필수로 시행해야 한다.

절대평가로 바꾸려는 시도가 번번이 좌절된 이유는 대학 입시에서 고등학교 성적을 바탕으로 선발할 때 우열을 가르기가 어렵고, 특목고와 자사고, 비평준 일반고 등이 대부분 학생에게 최고 성적을 주고 대학은 그런 학교 출신을 위주로 선발하는 불공정 상황이 유행할까봐 반대하는 벽에 부딪쳤기 때문이다. 이런 퇴행적 불공정 상황이 예상되는 이유는 과거의 ‘성적 부풀리기’ 경험 때문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성취평가제는 예상되는 문제점을 예방하는 장치를 마련하면서 가야할 길을 갈 것이다. 대학은 학종에서 진로선택과목의 정성평가 경험을 쌓고 있는 중이므로 2028 대입 상황에서 성취평가 성적을 받아보고 당황하지는 않을 것이다. 고등학교는 성적 부풀리기를 방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해야 하고, 교사는 A와 B, B와 C를 가를 수 있는 평가 안목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모든 교육 제공자들이 교육이 제대로 돌아갈 수 있도록 협력을 해야 한다.

해외에서 IB교육과정을 이수한 학생이나 AP 성적을 가진 학생들뿐 아니라 해외 현지 학교들 대부분이 절대평가 성적을 쓰면서도 공인 가능한 장치를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우리 문제점을 개선하는 데 시사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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