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입학사정관의 공부법 (111) - 이과 학생들의 문과 침공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코로나 시대의 공부법"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저자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3.01.16 09:32 | 최종 수정 2023.02.06 15:48 의견 0

2023년 1월 6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출연했다. 인터뷰 말미에 김현정 앵커가 물었다.

“통합 수능 2년차의 부작용이 이과의 문과 침공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대학의 문과 몰락 현상이 서서히 나타나고 있는데, 고교 현장에서 문·이과가 엄연히 현실적으로는 나뉘어 있는데 대학 입시를 치를 때는 교차로 마구 지원하다보니까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했습니다만 결론적으로는 이과 학생들이 간판을 따려고 문과로 진학을 했다가 무더기로 휴학을 하는 사태가 벌어진다고 해요. 통합 수능의 부작용, 어떻게 보세요?” 이어서 ‘어떤 과는 70%가 이과생으로 채워져 있다.’고도 했다.


이 말을 들은 학생이 물었다. 이과에서 문과로 가면 더 좋은 대학에 갈 수 있어요?

상위권 대학이라는 곳에서 이과생의 문과 지원 현상이 나타난다. 과학탐구 본 학생이 이공계로 진학할 경우보다 인문사회계로 진학하면 대학 등급이 하나쯤 오른다고 한다. 2022년 2월에는 한국대학신문에는 “서울과기대 점수에서 연세대 국문 합격… 통합수능 이과생 유리 현상 현실로”라는 기사가 실렸다(한국대학신문 2022.02.16.). 이런 사례를 믿고 대학에 지원하면 합격 가능성이 거의 없다. 국문과 합격선이 유난히 낮아서 생긴 이변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적성에 맞지 않는 곳으로 진학해서 공부를 제대로 못하면 복수전공이든 전과든 하기가 어렵다. 대학 성적순으로 기회가 주어지는데 적성에 맞지 않는 학과에 다니면 성적이 좋을까?

경희대는 2022학년도 인문계열 학과의 수학 선택과목별 지원율을 발표했는데 미적분 응시자가 많은 학과는 미적분 공부가 필요한 학과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자율전공학부, 빅데이터응용학과, 건축학과(인문) 등의 학과는 미적분 응시자 비율이 높고, 사학과, 철학과, 사회학과 등은 확률과 통계 응시자 비율이 70% 이상이었다. 이런 경향으로 보면 무작정 문과 침공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고 보면 대학에는 문과 이과로 나누기 어려운 전공 또는 문·이과 공부가 통합적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학과가 컴퓨터학과, 화학과, 건축학과 정도가 아니라 생각보다 많다. 이런 전공을 하기 위해서는 미적분을 공부하고 과학을 더 공부하는 것이 유의미한 일이라서 이과의 문과 침공이라고 하기는 어렵다.

내일교육 1075호에서도 교차지원을 다루었는데, 기사 중 자연계열 응시자가 교차지원 가능한 학과를 대학별로 많게는 10여 개를 제시했다. 예컨대 건국대는 지리학과, 문화콘텐츠학과, 신산업융합학과, 정치외교학과, 경제학과, 행정학과, 국제무역학과, 응용통계학과, 융합인재학과, 글로벌비즈니스학과, 경영학과, 기술경영학과, 부동산학과, 의상디자인학과 등이 이과생이 지원할 학과라고 제시했다. 이 학과들은 미적분과 과학을 공부한 학생에게도 맞는 학과며, 확통만 공부한 학생이라면 대학에서 경제수학을 배우거나 인공지능 프로그램으로 데이터를 처리하기 위한 공부를 하기 위해서 미적분을 대학에 와서 공부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는다. 결국 학생이 과학과 미적분을 공부한 것은 대학 공부에 필요한 공부를 한 것이지 이과 공부를 했지만 성적 따라 문과로 진학한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수시 입시에도 이런 현상이 있다. 2021학년도 수시 입시에서 공인회계사의 꿈을 가진 학생이 경제학과에 지원했는데 그 학생은 물리학Ⅰ·Ⅱ, 화학Ⅰ·Ⅱ를 수강했다. 그리고 모 대학에 수시로 지원하여 합격했다. 사람들은 교차지원이라고 했다. 그러나 그 학생은 문자보다 숫자가 더 좋아서 물리학과 화학을 선택했다고 한다. 대학은 공인회계사는 과학 지식이 필요할 때도 있으니 적성에 맞지 않는다고 볼 수는 없다는 입장이었을 것이다.

이런 사례는 물론 드물다. 문과라는 대학의 전공은 사회탐구 중심으로 공부를 하고 수학은 미적분을 배우는 경우가 많지는 않다. 미적분이 문·이과를 가르는 과목이 아닌 일반선택과목이라도 사회탐구를 대부분 선택한 학생은 미적분을 배우지 않는다. 이 학생들이 수시에 지원해서 합격한다. 이과생의 정시 침공은 정시 수능전형에서 일어난다.

그런데 수능으로 많은 학생을 선발하는 대학은 정원의 40%의 학생을 뽑는다. 2019년 11월 교육부는 2024년까지 40%를 채우라고 했었다. 그 40%의 60%가 이과생이라면 정원의 4분의 1이 이과생이라는 말이다. (김현정 앵커가 ‘어떤 과는 70%가 이과생으로 채워져 있다.’고 한 말은 사실일 가능성이 없다.) 이 중 일부 학생이 학업을 중단하는 것은 과거에도 있었으므로 새로운 심각한 문제라고 하기는 어렵다. 대학에서도 지금 1학년 문과에서 이탈이 심하게 나타나는 문제가 있는가에 대해서는 아직은 문제가 없다는 반응이다. 새 학기에 등록을 해보면 문제가 있을 수도 있을까?

전에 없던 이과 침공이 두드러져 보인 것은 과학의 표준점수가 사회 표준점수보다 높았던 이유도 있다. 2023 대입에서는 사회 표준점수도 과학 표준점수에 못지 않아서 이과의 문과침공은 두드러지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과의 문과 침공보다 더 큰 문제는 수시 입학생의 이탈에 있다. 2022년 11월에 있었던 제2차 대입개편전문가포럼에서 원광대 이문영 교수는 ‘2020년과 2021년 입학생 중 수시 입학생의 이탈률이 급격히 높아졌다고 하는데 이는 아마도 정시 학대의 영향이 아닌가 한다.’고 문제를 제기했다. 정시 확대가 이과생의 문과 침공으로 나타나고, 수시 입학생도 다시 입시의 전장으로 뛰어드는 현상을 유발할 뿐 아니라 수능 공부가 학교 공부를 배움 중심으로 돌려 놓으려는 시도를 왜곡하고 있다면 수능에서 문·이과를 가르는 일이나, 대학에서 입학 조건에 미적분 응시자는 문과 지원 못하게 하는 방안보다 앞서 해야 할 일은 정시 확대 조치를 원위치하는 일이다.

김현정의 뉴스쇼 방송 이후 교육부는 이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11일, 이 장관은 정부서울청사에서 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대학 입학처장 간담회를 열고 "최근 문·이과 통합형 수능을 둘러싸고 우려가 나타나고 있어 아쉽다."며 "수능 과목으로 인해서 입시에 불리함이 발생하지 않도록 수능 시험 난이도를 적절하게 조절하고 대학, 대교협과 소통해 개선 방향을 찾아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밝혔다고 한다.

교육부는 "간담회에서 각 대학의 대입전형 운영 결과, 전형별 합격 학생 데이터 등을 객관적, 체계적으로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바람직한 대입 전형 운영 방향을 모색하기로 대학들과 협의했다."고 밝혔다고 한다.(노컷뉴스. 2023.01.11.) 이에 따라 2025 대입에서 문제를 해결할 어떤 대책을 마련하겠지만 이과 침공에 대한 문제 제기는 중요한 문제인가를 다시 검토해야 하고, 각 대학의 분석 자료도 잘 검토해서 답을 정해놓고 정책을 추진하는 일이 일어나지는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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