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입학사정관의 공부법 (188) - 문해력(1) '우천시'가 어디일까요?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원장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코로나 시대의 공부법"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아이의 청해력" 저자

김창현 승인 2024.07.22 13:36 | 최종 수정 2024.07.28 16:48 의견 0

어느 고등학교 선생님이 질문이 있으시단다. ‘아이들이 문해력이 떨어져 수업이 잘 안 되는데 문해력 길러주는 방법이 무엇일까?’라고 묻는다. 이 질문에 얼핏 ‘우천시’ 이야기가 떠올랐다.


모 일간지에서 “우천시 OO로 장소 변경이라고 공지하면 ‘우천시에 있는 OO지역으로 장소를 바꾸는 거냐’고 묻는 분도 있다”는 기사가 촉발한 문해력 논란이다. 이런 상황은 사회 전반에 문해력이 떨어져서 의사소통이 안 된다는 문제가 드러났기 때문이기보다 우리가 어휘를 이해하지 못한 어떤 사람이 물어보는 상황이 쉽게 드러나는 정보통신 사회, 민원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처음 들었을 때는 우스개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닌가 싶기도 했다. 실제 상황이라고 하더라도 전반적인 의사 불통이 문제라기보다는 소수가 한 언행이나 질문이 화젯거리로 등장했다가 사라지는 코메디에 불과해 보인다. 1970년대에도 대학생 대상으로 설문을 했는데 ‘여인숙을 여인이 자는 곳’이라고 대답했다며 문해력이 낮음을 우려하는 기사가 있었다. 당시 대학생이라면 현재 70대이다. 그렇다고 해서 의사소통이 더 안 되는 사회로 나빠졌다고 할 근거는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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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우리 사회가 문해력이 떨어진 사회라는 점에는 대부분 동의를 한다. 하나는 의사 불통에 대한 이야기이고 하나는 학교 공부와 관련된 이야기이다. 언론에서 다루고 있는 대상은 사회의 의사 불통에 대한 이야기인데, 은어나 외래어를 사용함에 따라 의사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지 않는 현상을 말한다. 사단법인 국어문화원연합회에서는 보도자료나 기사를 검색하여 새말을 발굴하면 국립국어원에서 대체할 말을 제공하고 정부나 지자체와 언론사에 다듬은 말을 사용하도록 권고하여 의사 소통이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지원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펫로스 증후군을 반려동물 상실 증후군으로, 디지털 사이니지를 전자 광고판으로 다듬는 것과 같은 일이다. 그런데 잘 사용하지 않는 어휘보다는 사회 곳곳에서 많이 사용하지만 모르는 사람도 많은 어휘가 의사소통을 방해하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주문은 키오스크에서 하세요.’는 어떻게 하라는 말일까?

과거에는 어려운 한자어가 의사소통을 방해했었다. ‘영어(囹圄)의 몸이 되었다. 교통사고로 많은 사람이 역사(轢死)했다.’와 같은 말이 의사소통을 방해하던 시대도 있었지만 이제는 영어나 역사 같은 어휘는 죽은 말이 되었다. 많은 사람이 관심을 가지고 쉬운 말을 쓰는 노력을 하면 어휘에 의한 의사 소통 장애는 해소가 될 것이다.

어휘의 정의에 대한 차이 때문에 의사 소통이 잘 안되는 경우도 많다. '수능이 공정한가, 학생부종합전형이 공정한가'에 대한 논란은 지난 몇 해 동안 지속되었는데 이에 관한 세미나를 할 때마다 공정성에 대한 정의를 세우는 논의부터 시작하였었다. 공정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수능이 공정하기도 하고 학생부종합전형이 공정하기도 하다는 주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은어가 의사 소통을 방해하는 경우도 갈수록 많아지고 있다. ‘고터에 가서 강신에 들렀다가’라는 말은 '고속터미널에 가서 강남신세계백화점에 들렀다'는 말이라고 한다. 입시 관련 용어도 정도가 심하다. 학생들은 ‘낙지로 8칸~9칸이면 무조건 된다고 보면 되나요?’와 같은 질문을 한다. '변표', '누백' 같은 어휘는 워낙 많이 쓰이니 모르는 사람 잘못으로 치부되지만, '제곧내' 같은 ‘제목이 곧 내용’이라는 뜻을 줄인 말은 일반인은 알 길이 없다. 모르면 물어보는 수밖에 없지만 대세가 은어를 인정하는 분위기를 몰고 가면 어쩔 수 없어 보인다. '학생부종합전형'을 '학종'이라고 부르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은 분위기가 그것이다.

이밖에도 문장 구조가 잘못되어, 주어를 사용하지 않아서 의사소통에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그래도 대화 사이에는 맥락 속에서 해석이 가능한 경우가 많아서 의사소통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는 많지 않다. 대중 앞에서 발표할 때는 말을 녹음하면 바로 문서가 되도록 정확하게 말하는 습관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학생이 문해력이 떨어져서 문제라는 지적은 학생이 현재 하고 있는 수업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문제라는 말이다. 모든 학생이 그런 상태인 것은 아니지만 점점 많은 학생이 말귀를 못 알아 듣거나, 과거에는 수동적으로 수업하니까 말귀를 못 알아들어도 드러나지 않았었는데 지금은 학생 참여 수업을 하니까 드러나서 문제가 되었을 수도 있다. '우천시는 어디에 있는 도시가 아니고 비가 올 때라는 말'이고, '금일이 금요일이 아니고 오늘이라는 말'이라는 것을 몰라서 문제가 된 것이 학생이 아니고 학부모라면 어휘력 문제는 과거에도 잠재해 있었는데 수동적 학습 상황 때문에 드러나지 않았던 것으로 보는 것이 맞지 않을까?

MBC에서 방송한 ‘공부가 머니’에서도 국어영역 성적이 오르지 않는 학생이 '고지식은 지식이 많은 것'이라고 답했었는데, 이 학생처럼 많은 사람들이 어휘력 부족을 겪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사전 찾아가면서 책을 읽으라고 지도하는데, 그 단원 이후에도 낯선 어휘를 사전에서 찾아보았다면 어휘력은 많이 늘었을 것이다. 그래도 절반의 학생들은 이 정도를 고등학교 졸업 때는 이해를 한다. 다음 글은 2022학년도 수능 국어영역에 출제되었던 글인데 이어지는 문제의 정답률이 50% 가까이 되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문해력이 부족한 나머지 절반이 문제이다.

“헤겔은 미학도 철저히 변증법적으로 구성된 체계 안에서 다루고자 한다. 그에게서 미학의 대상인 예술은 종교, 철학과 마찬가지로 ‘절대정신’의 한 형태이다. 절대정신은 절대적 진리인 ‘이념’을 인식하는 인간 정신의 영역을 가리킨다. 예술ㆍ종교ㆍ철학은 절대적 진리를 동일한 내용으로 하며, 다만 인식 형식의 차이에 따라 구분된다. 절대정신의 세 형태에 각각 대응하는 형식은 직관ㆍ표상ㆍ사유이다. ‘직관’은 주어진 물질적 대상을 감각적으로 지각하는 지성이고, ‘표상’은 물질적 대상의 유무와 무관하게 내면에서 심상을 떠올리는 지성이며, ‘사유’는 대상을 개념을 통해 파악하는 순수한 논리적 지성이다. 이에 세 형태는 각각 ‘직관하는 절대정신’, ‘표상하는 절대정신’, ‘사유하는 절대정신’으로 규정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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