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학자 앨빈 토플러 교수를 중앙일보 최형구 홍콩 특파원이 인터뷰한 2007년의 기사는 한때 우리 교육에 경종을 울리는 언사로 회자되었었다. ①
“한국에서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교육이 정반대로 가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여기서 말한 10시간이 15시간으로 둔갑하여 우리 학교 교육의 문제점으로 지적되었었다. 이렇게 공부한 학생의 학생부에는 ‘12시까지 학습실에서 공부한 성실한 학생’이라고 적힌다. 이 말은 학생의 우수성을 담보할 수 있을까? 그 학생의 문제해결력은 수능 문제에서 보기 중 정답 찾는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유발 하라리 교수가 쓴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은 우리나라에서 2018년에 초판을 찍은 이후 진작 50쇄를 넘겼다. 이 정도면 모든 도서관에서 이 책을 만날 수 있다. 이 책에 실린 21가지 제언 중에는 ‘교육’에 대한 부분이 있다. ‘19. 교육: 변화만이 유일한 상수다.’가 그것이다.
우선은 현실 진단을 바탕으로 한 문제 제기.
“인류는 지금 전례 없는 혁명기에 직면했다. 우리가 아는 옛 이야기들은 다 무너져내리고 있는 반면, 그것들을 대신할 새로운 이야기는 아직 등장하지 않았다. 이토록 전례 없는 변혁과 뿌리째 흔들리는 불확실성의 세계에 우리 자신과 아이들을 어떻게 대비시켜야 할까?”
변혁의 세계에서 미래를 이야기하는 것이 얼마나 부질없는가를 위트 있게 이야기했다.
“만약 누군가가 21일 세기 중반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공상과학 소설처럼 들린다면 그것은 거짓일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누군가가 21세기 중반의 세계를 묘사하는데 공상과학 소설처럼 들리지도 않는다면 그것은 확실히 거짓이다.”
미래 세계는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보다 더 알 수 없는 세계가 될 것이다. 영화 <레디 플레이어 원>에서 보이는 등장인물의 가상현실 속 자아정체성조차 현실에 가깝게 느껴지리라는 것이다. (영화에 대한 언급을 더 하지 않아도 바로 스마트폰을 가지고 검색해서 알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지금의 세계는 불과 15년 되었다.) 이처럼 상상할 수조차 없는 변화가 일어날 것이므로 공상과학처럼 들리지 않는다면 거짓이고 공상과학처럼 들려도 거짓이라는 말이다. 실제로 일어날 변화는 어떤 방향과 속도로 변할지 알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비록 지금으로서는 세부 내용을 확신할 수는 없지만 변한다는 것만큼은 유일하게 확실한 미래의 진실이다.”라고 말했다.
이런 현실 앞에서 우리가 아이들 머리에 정보를 밀어넣는 교육을 한다면, 그것은 아이가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게 방해하는 죄를 범하는 것일 가능성이 크다. 그래서 기존의 지식을 교사가 가르치고 학생은 교사의 지식선을 따라가는 학습을 버리고 학생이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연습을 해봐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자기주도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국가 수준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인간상 중 첫 번째가 자기주도적인 사람이다. 대학도 자기주도적인 태도를 갖춘 사람을 뽑으려고 한다. 이 덕목이 대학의 평가 기준 중 학업태도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교육은 학생 참여를 중심으로 이루어져서 학생이 직접 해보는 과정에서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는 힘을 기르는 방향으로 이루어져야 한다고 국가 차원에서 방향을 제시한 것이 1986년이었다. 수업 개선과 함께 평가 역시 결과만 평가할 것이 아니고 과정도 평가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이후 교수・학습 개선 및 평가 개선은 지속적인 교육과정 개선의 중심 주제였었다.
금년도(2025학년도) 고등학교 2, 3학년이 배우고 있는 2015 개정 교육과정은 교육과정을 고시할 때 보도자료에서 2015 개정 교육과정의 특징을 ‘교과별 핵심 개념과 원리를 중심으로 학습내용을 적정화하고, 교실 수업을 교사 중심에서 학생 활동 중심으로 전환하기 위한 교수・학습 및 평가 방법을 제시한 점’을 꼽았다.
이와 관련하여 한국교육과정평가원에서 2016년에 <창의인성교육을 위한 학생평가 이렇게 하세요!>라는 책자를 발간하여 결과 평가뿐 아니라 학습에 도움을 주는 평가에 대한 안내 자료를 내었다.
▲2016년 제공된 한국교육과정평가원 안내자료
기존의 평가는 학기에 몇 번 시험을 봐서 학생이 학습한 결과만을 숫자로 산출하는 역할을 했지만, 앞으로의 평가는 학생이 학습을 하고 있는 과정 중에 최종적인 학습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무엇을 더 알아야 하고 더 연습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역할도 포함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평가 방식을 사용하면 시험을 망쳐서 실력을 정당하게 평가받지 못하는 학생이 생기지 않게 되는 이점도 있다.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는 학습을 몇 단계로 나누어 제시하고 있다. 학생이 새로운 내용 학습을 하게 될 때 교과지식과 개념・원리를 교사의 설명을 듣고 배우게 되는데, 이때 교사는 학생이 잘 이해하고 생각이 따라오고 있는 중인지, 오개념은 없는지 등을 점검하여 학생이 배워야 할 내용의 기초를 분명히 알도록 이끈다. 지도 중에 친구끼리 짝지어 설명하기, 개념 공책에 쓰기 등의 방법으로 학습 상황을 확인한다. 이어서 학생이 배운 개념・원리를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연습(훈련)을 하도록 하고 그 과정에서 교사는 학생이 어려워하는 부분이나 부족한 부분이 무엇인지를 평가한다. 이런 수업에서는 문제를 해결하는 활동은 탐구활동이 되고 평가는 과정평가가 된다. 이후 발표하고 성찰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런 학습 활동을 통하여 학생은 역량이라는 결실을 얻는다. 이런 그림이 낯설지 않은 것이 지금의 교실이다.
이런 학습 과정에 디지털 기능이 접합된다. 교사가 AI의 도움을 받아 수업과 평가를 쉽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이 도입된다. 학생별로 자기 모니터 앞에서 교사가 제시하는 학습 내용에 반응하고 의견을 제시하며, 과제를 혼자 또는 협력해서 해결해가고, 이 과정을 AI가 분석하여 학생의 학습 과정과 수준을 점검하며 도와주는 방식이 곧 일반화될 전망인 시대에 왔다. 미네르바스쿨이 이 방식으로 수업을 해서 효과를 높이고 있다고 하며, 국내 대학들도 온라인 학습에서 학습관리시스템을 도입하고 있고 이미 도입한 대학도 많다. 가까운 미래에 초・중등교육에도 이 방식이 적용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저절로 수업은 수행평가와 연결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행평가를 폐지해 주세요.’라는 청원은 파장이 커 보인다. 언론도 목소리를 낸다. 여론이 몰고 온 이슈의 끝에는 어떤 결과가 기다리고 있을까?
◆◆◆ 각주 ◆◆◆
①https://www.joongang.co.kr/article/28904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