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서 1년을 보내고 온 중학생 엄마가 우리나라와 미국 학교의 차이에 대하여 한 이야기 중 기억에 남는 하나.

“우리나라는 시험 결과만 성적에 반영하는데, 미국은 과정도 성적에 반영한다.(앗, 우리도 과정평가 하는데.) 그런데 과정을 평가할 때 학생이 완벽하게 해낼 때까지 계속 조언하고 기회를 주어 완벽한 결과물을 낼 수 있게 되면 이전 성적을 고쳐준다. 그래서 끝까지 노력하면 최고 성적을 받을 수 있다.”

우리 수행평가도 성적을 최종 성적에 반영하는 평가와 성적을 최종 결과에 반영하지 않고 조언 자료나 진단 자료로만 쓰는 평가가 있다. 모든 과정을 성적에 반영하고 고정된 점수를 부여한다면 학습을 위한 평가와는 거리가 멀어 학생이 부담을 갖게 된다. 어떤 방식으로 수행평가를 할 것인지는 교사가 정한다. 이때 교사는 부담을 줄여주면서도 효과적인 방법을 쓸 것이다.


모 영재학교에서 학생들을 만났는데, 학생들에게 소원이 있다면 말해보라고 했었다. 그 중 몇 학생이 말한 소원은 이것.

“선생님이 설명하는 수업으로 공부했으면 좋겠어요.”

학생이 참여하는 학습이 얼마나 부담되는지를 절감하게 하는 말이었다. 영재학고나 과학고뿐 아니라 외국어고나 몇몇 자사고도 수업이 학생이 탐구하고 발표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하는데, 이 방식을 좋아하는 학생도 있고 아닌 학생도 많다. 그러나 가야할 방향은 학생 참여 수업과 과정평가임에 변함이 없다. 역량을 기르는 학습과 평가의 일체화는 교사 중심 수업으로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정설이다.


서울대에 입학한 IBDP 교육과정으로 공부한 학생을 인터뷰했었다.

“IB 교육과정이 아닌 반과 IB반은 어떻게 달랐나요?”

“3학년 2학기가 되었는데요, 다른 애들은 수능 준비한다고 밤늦게까지 문제집 풀고 있는데, 우리는 조별 과제하면서 재미있게 공부했어요. 모여서 과제를 하는데 웃으면서 즐겁게 해서 수능 공부하고 있는 친구들한테 정말 미안했어요.”

수행평가 폐지 주장은 기본기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공부보다 수능 문제풀이 공부와 가깝다. 수능 대비 공부에 학생은 행복해 할까?


2017년에 출판된 <교육과정 수업 평가 기록 일체화> 책이 생각났다. 많은 독자들이 읽었다는 책이다. 이 책에서는 평가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했을까?

“수업이 바뀌면 그다음 순서는 평가에 대한 고민이다. 학생이 중심이 되어 수업을 진행했는데 학생의 활동에 대한 평가를 일체식 평가로 하는 것은 그리 적절하지 않다. 학생 참여 수업에서는 활동의 처음 중간 끝을 평가에 반영해야 한다. 이를 과정평가라고 할 수 있다. 결국 우리는 수업의 변화는 평가를 바꾸고, 수업의 변화는 기록을 풍부하게 한다는 명제에 동의할 수밖에 없게 된다.”

“수행평가 과제를 주고 그 과제의 결과물로 평가하는 방식이거나 일제식 지필평가의 변형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수행평가는 수업 중에 하는 방식이라야 한다.”

이같이 수업 중에 학생이 활동하는 모습의 처음과 중간과 끝을 평가하고 그 내용을 학생부에 기록하자고 했다.


그 무렵 학생이 참여하는 수업을 하고 과정 중심 평가를 반영한다는 고등학교를 방문했었다. 과거에는 학업에 수업 참여를 잘 하지 않는 학교였었다.

“학생 참여 수업으로 바꾸니까 자는 학생이 없어졌어요. 과정 중심 평가를 하면서 같은 모둠 학생끼리 참여를 하지 않는 친구를 독려하니까 혼자서 딴 생각 하거나 자는 학생은 확실히 줄었어요. 그만큼 교육 성과가 있는 거죠.”


학업 부담은 수행평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2022 개정교육과정은 기준이 4학점인데 대부분 과목을 3학점으로 개설하면 학기당 이수해야 할 과목수도 많아지고 학생이 참여할 시간은 적어진다. 그러면 학업 부담은 늘고 수업은 피상적이 되며 수행은 과제로 넘어가게 된다. 탐구를 학교에서 하더라도 준비를 집에서 많이 해와야 완성이 가능하다. 교육과정의 생각은 ‘적게 가르치고 많이 배우는 학습’을 추구하는데, 학교는 더 많은 과목을 개설해야 세특량이 많아지고 그래야 대입 성과가 좋을 것으로 예상하기 때문에 3학점을 선호한다.

대학의 입장은 아직은 유보적이다. 모 대학 사정관이 질문에 대답했다. “2028년 대입에서 학생부를 읽어봐야 3학점이 좋은지 4학점이 좋은지에 대한 의견을 낼 수 있으니까요.”


방향이 맞아도 학교 현장에서 실행될 때에는 문제가 되기도 한다. 수행평가의 문제점은 수정되어야 할 것이지 폐지되어야 할 것은 아니다. 이미 수행평가를 강조한 교실 정책이 20년은 되었고, 그때도 수행평가가 학생에게 과부하가 걸리지 않게 과목별 시기와 내용을 조정해 왔다. 당시에 평가계획을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했었다. 지금도 평가계획을 학교운영위원회에서 심의할 것이다. 학교에 있는 평가 관련 위원회에서 시기와 내용이 적절한지 관심을 두고 조정하면 과부하는 해결될 것이다.


수행평가를 폐지해달라는 청원은 수행평가의 문제점을 개선해달라는 말을 강력하게 한 것으로 이해하기로 했다. 수행평가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결과만을 중시하는 평가를 하자는 말이고, 이렇게 되면 학생은 휘발성 지식을 암기하는 공부를 하고, 수능을 보고 난 뒤에는 모든 공부 결과를 날려보내는 과거로 회귀하자는 주장이 된다. 아이들이 ‘바람직한 어려움(desirable difficulty)’에 도전하고 성취의 즐거움을 갖도록 학습 지도 계획을 짜고, 그 과정에서 평가를 통하여 학생이 자신의 학습 상황을 점검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학생 성장에 도움이 된다는 생각은 이미 오래 전에 적용되어 왔다. 이런 생각을 실현하는 것은 정부나 교육청이 나설 일이 아니라 각 학교에서 권한을 갖고 실천해야 할 일이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