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 초등학교 5학년 아이입니다. 공부를 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대충합니다. 고칠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요?
A. 아이가 공부를 대충 한다는 건 공부를 하긴 하는데 내용을 정확히는 모르고 배운 걸 활용해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뜻이겠죠? 고치려면 원인을 찾아야 하는데 원인을 정확하게 찾기는 쉽지 않습니다. 아이가 냄비에 담긴 물에 손끝을 넣었는데 소리를 질렀다면 물이 뜨거워 손 끝에 통증이 온 것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물에 바퀴벌레가 있어서 또는 갑자기 잊고 있었던 중요한 약속이 떠올라서 등 다른 원인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요. 아이가 공부를 대충 하게 된 원인도 정확히는 알기 어렵습니다. 그래도 몇 가지를 짚어보겠습니다.
K는 초등학교 1, 2학년 때 선생님이 숙제를 내주시기만 하고 검사를 하지 않는 분을 만나서 숙제를 대충 하거나 안 하는 습관이 생겼습니다. 그러다가 3학년 때는 꼼꼼히 검사하는 선생님을 만났지만 “대충 하고 걸리면 혼나고 말지.”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선생님과 부모님은 이 아이의 마음을 모릅니다. 아이가 말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하고 있으니까요. 이 경우라면 아이가 잘 따르는 분이 멘토가 되어 아이를 잘 설득해서 성실성과 책임감을 채워 주셔야 합니다.
선행학습을 심하게 하면서 대충 공부하는 습관이 생겼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가 학원에서 두 학년 앞의 것을 배우는데 지금 배우고 있는 것을 70% 정도는 알아듣습니다. 그런데 진도는 계속 나가고 아이는 어차피 다음에 또 배울 거라는 걸 알고 있으므로 대충 공부해 둡니다. 막상 그 진도를 학교에서 나갈 때는 이미 배웠으니 아니까 대충 공부합니다. 그러다 보면 아이는 대충 공부하는 것이 습관이 됩니다. 이런 경우라면 진도를 달리는 선행을 멈추고 지금 배우는 것을 정확하고 깊이 있게 공부하는 습관을 들여야 합니다. 공부 시간 안배도 여기에 맞춰야 합니다.
대충 하는 데 작용하는 마음의 바탕이 유창성 효과에 있기도 합니다. 유창성 효과는 해 보지 않고도 유창하게 할 수 있다고 착각하는 것을 말합니다. 아이돌 동영상을 보면 자기도 쉽게 따라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막상 몸을 움직여 보면 생각처럼 춤이 추어지지 않습니다. 공부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뇌가 잘 모르는 것도 아는 것으로 착각하게 학생을 조종하고 있는 겁니다.
유창성 효과는 메타인지와 관련이 있습니다. 사람의 행동과 인식은 메타인지의 지배를 받는다고 합니다. 메타인지는 자신이 무엇을 아는지 모르는지를 아는 능력입니다. 그런데 대상이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면 안다고 착각을 하게 됩니다. 완전히 낯선 것이었다면 꼼꼼하게 찾아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을 했겠지만 대충 아는 정보가 있으므로 뇌가 안다고 판단을 해서 깊이 이해하는 것을 방해합니다. 뇌가 에너지를 절약해서 생존에 유리하게 진화해 온 것이 원인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정확한 근거도 없이 안다고 생각하고 대강 판단하는 것을 휴리스틱이라고 합니다. ‘저기 칼국수집이 있는데, 저 집이 원조네. 거기가 맛있을 거야.’와 같이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결국 아이는 기존의 지식을 활용해서 대충 지금 배우는 것을 이해하지만 이 이해가 오해일 수도 있어서 물어보면 설명을 못 합니다. 여기에는 과거에 배운 것을 대부분 망각했지만 그런 것이 있었다는 어렴풋한 기억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은 아이의 지식이 오개념에 머무르게 하기도 합니다. 지구는 둥글다는 사실을 두고 아이는 지구가 농구공 위에 쟁반을 얹은 모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아이가 가진 지식에 오개념이 많다면 오개념을 바로잡는 것이 공부의 출발점이 됩니다.
이렇게 보면 대충 공부하는 것은 사람이 가진 한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하므로 에너지가 많이 들어 배가 고픕니다.
공부를 할 때 우선 관련 지식을 점검해야 합니다. 보통 교실에서는 해당 단원을 공부하기 위해 알아야 할 것을 아는지를 점검하는 진단평가를 합니다. 진단평가 결과 부족한 것은 과거의 학습 결손이므로 반드시 채워야 합니다.
지금 배우는 것은 설명해 보아야 합니다. 방에 칠판을 두고 그날 배운 것을 설명하는 공부를 했다는 공부 잘하는 학생들의 이야기를 나도 실천하면 좋습니다. 이때 엄마가 직접 코치에 나서면 역효과를 낼 수도 있습니다. 아이는 엄마의 눈높이를 맞추지 못할까봐 두려워하기도 합니다. 친구를 가르치는 것도 칠판 앞에서 설명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냅니다.
소리 내서 읽고 내용을 요약해서 적는 것이 지식을 분명하게 합니다. 소리 내서 유창하게 읽을 수 있으면 내용을 빼먹지 않는 것과 내용을 잘 아는 것 두 가지는 해결됩니다. 낯선 어휘 등을 만나면 읽고 나서 사전을 찾아야 합니다. 글로 쓰면 내용을 정확하게 기억하는 데 다양한 감각이 동원되어 더 기억에 잘 남는다고 합니다. 손의 촉감, 글씨와 그림의 모양, 글을 쓴 공책의 자리까지 기억을 돕는 지원군이 됩니다.
어떤 분야의 것만 대충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좋아하는 것에는 몰입을 하는데, 마음에 들지 않으면 이해하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일종의 편식이죠. 시간이 지나서도 복구가 될 수 있는 과목이라면 두고 보아도 되겠지만 위계가 있는 과목이라면 지금 모르면 앞으로 나오는 것은 알 수 없으니 상황에 맞게 대응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