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학점제를 폐지해 달라는 주장 중 하나는 과목 선택에 관한 사항이다. 다른 두 가지는 미이수제 도입, 교수・학습 개선이다. 성적을 5등급제로 산출하는 것, 수능을 개편한 것은 고교학점제 관련 사항이라 하더라도 대입제도 부분이지 고교학점제의 본질 부분은 아니다.


그런데 학생 개개인이 과목을 선택하는 과목 선택형 교육과정은 제7차 교육과정 때부터 본격적으로 적용되었다. 즉 2002학년도 고등학교 입학생부터 적용되어 왔으니, 이제는 낯선 제도가 아니다. 단지, 미이수제 도입에 따라 모든 과목을 학기 집중 이수제로 편성해야 하니 고교학점제에서의 과목 선택과 성적 처리가 학기 단위로 된다는 점, 세특을 매 학기에 써야 한다는 점 등이 학교 입장에서는 불편하다. 그렇지만 매우 일부의 학교는 고교학점제 적용 이전에도 전 과목 학기 단위 편성도 해왔고, 2, 3학년이 같은 과목을 수강하는 무학년제도 운영해 왔다.


졸업 이수 학점과 기본 규정
2022 개정 교육과정 중, 고등학교 교육과정에서 졸업에 필요한 최소 이수 학점은 교과 174학점이다.

▶ 1학년은 공통과정으로 고시되어 있어서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 모든 학생은 수능 과목은 반드시 선택한다. 선택하지 않아도 되지만 대부분 학교는 필수 이수 과목으로 지정해 둔다.
▶ 체육 10학점, 예술 10학점과 기술・가정/정보 및 제2외국어/한문과 교양 교과 중 16학점은 반드시 선택해야 한다.

이런 규정을 적용하면 학생이 선택해야 할 과목은 많지 않다.

우선 국어, 수학, 영어 교과는 최대 81학점까지 선택할 수 있다

우리나라 고등학생은 국어, 수학, 영어 과목을 배우지 않는 학기가 없는 경우가 없으므로 이 과목을 채운다면 18과목이 된다. 각 4학점이라면 72학점이다. 국어와 영어 과목을 추가 선택하는 데는 대학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수능과목까지 잘 하면 그 이후는 국어 잘하는 학생, 영어 잘 하는 학생으로 평가된다. 즉, 영어에서 ‘영어 발표와 토론’ 과목을 선택할지 ‘미디어 영어’를 선택할지는 대입 유불리를 따지지 말고 학생이 좋을 대로 하면 된다는 말이다. 심지어 외국어고에서 배우는 과목인 심화 영어Ⅱ를 배웠다고 영어 잘하는 학생으로 인정해 주는 것도 아니다. 국어 역시 ‘주제 탐구 독서’든 ‘매체 의사 소통’이든 원하는 과목을 선택하면 된다. 즉 언론정보학과 지망자라면 매체 의사 소통을 이수해야 한다는 연계성이 없다.


수학 과목 선택의 중요성
수학은 이공계 지망자와 대학에서 경제수학을 해야 하는 모집단위 지원자 및 인문사회계 학과 중 미적분이나 기하를 필요로 하는 모집단위 지원자라면 이 과목을 선택해야 한다. 수학에서 기하, 미적분Ⅱ, 인공지능수학을 추가로 선택했다면 국수영 교과 80학점이 꽉 찬다. (한 과목을 덜 선택했다면 76학점이 된다. 이 한 과목에 해당하는 학점은 사회/과학 선택에 쓸 것이다.) 국수영 과목 81학점은 상한선이다. 81학점 이상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81학점 이하로 선택하라는 것이다.

한국사 1+2는 6학점을 반드시 이수해야 한다. 여기까지 86학점이다.

다음은 체육 10학점, 과목은 학교 지정일 것이다. 음악, 미술, 연극 등 예술 10학점, 과목은 학교 지정이거나, 선택이라면 학생이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하면 된다. 연주보다는 감상을 좋아한다면 ‘음악 연주와 창작’보다는 ‘음악 감상과 비평’을 선택할 것이다. 여기까지 106학점이 되었다.

이제 기술・가정/정보/제2외국어/한문/교양 교과에서 16학점 이상을 선택해야 한다. 모든 영역을 합하여 16학점 이상이면 된다. 우선 제2외국어/한문을 선택할지 말지를 정한다. 서울대 인문대 등 몇 모집단위에서는 제2외국어/한문을 권장 과목으로 제시했다. 제2외국어/한문을 선택하지 않고 인공지능 기초나 데이터 과목을 선택할 수도 있다. 그런데 대부분 대학의 IT 겨열 학과에서는 정보 과목보다는 수학 과목을 권장과목으로 제시한 점에 유의해야 한다. 이 과목들에 교양과목까지 합하여 4학점 과목이라면 4 과목을 선택하게 된다. 여기까지 106학점 더하기 16학점은 122학점이다.

이제 174학점 중 남은 학점은 52학점이다. 52학점 중 공통과목이자 수능 범위 과목인 통합사회1+2(8학점), 통합과학1+2(8학점), 과학탐구실험1+2(2학점)의 합계 28학점을 빼면 24학점이 남는다. 즉, 2, 3학년 사회/과학 과목 중 4학점 6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그래서 국수영 과목에서 76학점만 선택해야 7 과목을 선택할 수 있다.
서울대는 이공계 등 학과는 수학에서 미적분과 기하를 이수할 것을 권장하고, 과학은 진로선택 3과목 이상 선택하도록 권장했다. 만약 일반선택 3, 진로선택 3과목을 선택하고 사회도 1과목 이상 선택하려면 여유는 국수영에서 남긴 학점밖에는 없다.


진로와 연계된 사회·과학 과목 선택
사회와 과학에서 어떤 과목을 선택할지가 진로와 관련이 있다. 요즘 유행하는 의대 지망생이라면 일반선택의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과 진로선택의 세포와 물질대사, 생물의 유전(이 두 과목은 권장과목이다)과 화학에서 화학반응의 세계를 선택할 것이다. 이렇게 6과목 찼는데 사회 한두 과목을 선택해서 수강하려면 수학은 수능 과목에 미적분Ⅱ만을 선택할 것이다.

사회과목은 전공 관련성이 크지 않으므로 자신이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하면 된다. 경제과 진학해서 경제사 공부를 하려면 경제도 중요하지만 세계사를 선택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는 식이다. 한편 그로벌 시대에 맞는 글로벌한 내용의 과목인 세계사와 세계시민과 지리, 인문학 시대에 인문학적 소양 관련 과목인 윤리와 사상 등을 선택하면 후회하지 않을 것이지만, 이 과목들이 공부양이 많거나 어렵다는 것 때문에 주저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대부분 학생은 과학 과목을 어떻게 선택할지가 가장 큰 고민이고 다른 과목은 부담되는 과목을 빼고 나서 선택하면 되니 차근차근 생각해 보자.


추가 고려사항
1) 대부분 과목을 3학점으로 편성하면 선택할 수 있는 과목이 늘어난다. 그런데 깊이 있는 학습을 수업 중에 할 수 있게 지원하려면 대부분 과목을 4학점으로 편성해야 한다. 4학점으로 편성해야 조금만 가르치고 많이 학습하게 한다는 교육과정 취지와 맞는다. 이 점은 대학에다 3학점과 4학점 편성 중 어떤 것이 좋아 보이는지를 물을 일은 아니어 보인다.

2) 고교학점제 초기 연구에서는 일부 과목은 2개 학기 편성을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했었는데, 적용되지는 않았다. 진로와 직업 같은 교양과목이 그 예이다.

3) 진학을 원하지 않는 학생 중에는 고시 과목 이외의 과목을 선택하고 싶어할 수 있다. 고교학점제 시범 기간 중의 설문에 의하면 보컬 트레이닝, 바리스타, 소물리에, 반려견 미용 등 과목을 개설해 달라는 요구가 있었다. 직업 위탁 교육이 학원에서도 이루어지듯 외부 및 지역사회 개설 과목 중에서 고교 수준에 해당하는 교육과정임을 인증해 주고 그곳에서 이수를 허용하는 제도를 검토할 필요가 있다. 방송통신고 교육과정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

4) 교육과정과 대입의 현장 최고 전문가 조복희 선생님은 ‘(모집단위별 핵심/권장과목을) 대학에 물어보지 말고 우리가 학업 설계 지도를 잘하고 그 과정에서 나타나는 현상을 대학에 이야기해서 평가에 반영해 달라고 하자’고 말씀하셨단다. 이런 취지에서 고교 교육과정에 대한 대학의 이해 증진을 위해 서울중등교육과정연구회에서는 지난해에 입학사정관 대상 교육과정 연수를 진행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