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입학사정관의 공부법 (87) - 대입 경쟁은 완화될 수 있을까? (1)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코로나 시대의 공부법"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저자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2.08.01 09:35 | 최종 수정 2022.08.07 14:16 의견 0


70년대와 80년대 초반에는 매 해 90만 명 정도가 세상에 탄생의 울음소리는 내었습니다. 이 때 태어난 사람들이 지금 중·고등학교 학부모입니다. 그 때 대입 경쟁은 가히 살인적이었습니다. 절대 인구도 많고 진학을 희망하는 수험생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대학 가기는 어려웠고 원하는 사람은 많으니 대입에 만족하는 사람보다는 좌절을 겪은 사람이 더 많았습니다. 가까이에 있는 대학을 두고 멀리 지방으로 유학을 가야 하기도 했습니다. 지방 대학도 쉽게 가기가 어려웠습니다. 공부를 꽤 하던 서울 잠실 사는 J가 대구시에 있는 사립대학에 지원했는데 떨어질까봐 조마조마 했었을 정도였습니다. 지금 그 대학은 미달 사태를 겪고 있습니다. 그 대학뿐 아니라 많은 지방대학은 현재 학생을 선발하기 어려운 처지에 있습니다. 학생수가 급격히 줄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미달인 대학이 많은데도 여전히 대학 가기는 어렵다고 하소연합니다. 마이클 센델 교수는 하버드에서 신입생을 2천 명 정도 선발하는데, 4만 명이 지원하니 자격이 되는 두 배수 정도를 대상으로 추첨을 하는 제도를 운영할 것을 주장했습니다. 이렇게 하면 하버드 대학생은 자신의 능력으로 입학한 게 아니라 운이 좋아서 하버드에서 공부할 기회를 부여받은 게 되므로 능력주의가 불식될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능력주의가 불식되면 조금이라도 더 이름 있는 대학에 가려는 경쟁은 줄어들 수 있을 겁니다.

문제는 이런 제도를 우리나라에 적용할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수능이 공정하므로 40% 이상을 선발해야 한다는 공정 위주 정책 앞에서 추첨 전형이 공정하다고 국민을 설득하기는 어려워 보입니다. 또한 4만 명을 대상으로 4천 명을 일단 선발하는 제도라면 4천 명 안이 들기 위해서 무한 경쟁이 벌어질 것입니다. 그러고 보면 센델 교수의 주장은 대입 경쟁을 완화하는 정책이라기보다는 능력주의 사회의 폐단을 없애는 정책으로 보입니다.

인구학자 조영태 교수는 인구가 줄어도 다들 수도권 대학에 가기를 원한다면 경쟁률만 줄 뿐이지 대학 가기가 쉬워지는 것은 아니라고 그의 저서 《인구 미래 공존》에서 말합니다. 대학에 가려는 수험생 모두가 인서울을 원한다면 현재도 5.7대 1은 되는데 2030년이 되어도 5대 1 아래로 내려가지 않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경쟁률이 떨어지면 합격점이 낮아지기는 합니다. 1만등이어야 들어가던 대학의 경쟁률이 20% 낮아지면 전년도의 1만 2천등에 해당하는 성적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정도로는 대학 가기가 쉬워졌다고 말할 사람은 없습니다. 만등과 만 2천등은 수능 한 문제 차이일 뿐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대학 가는 경쟁이 심해서 사회문제가 되니 이 경쟁을 완화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많은 논의가 있습니다. 특히 2024년 2월 말에 발표할 새 대입제도를 두고 대입에 대한 논의가 공론화의 장에 뜨게 될 겁니다. 그러나 대입 경쟁 완화에 대한 대책을 논의할지는 미지수입니다. 지난 정부에서도 대입제도 개편을 추진했지만 경쟁 완화 대책이 포함되지는 않았습니다.

지난 정부에서는 2022학년도 대학입시제도 개편과 관련하여, 2018년 4월 11일 주요 대학입시제도 개편에 대해 국가교육회의에 숙의와 공론화를 요청하는 『대입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을 발표했습니다. 교육부는 선발 방법(수능 전형과 학생부종합전형 간의 비율), 선발 시기(수시, 정시 통합 여부), 수능 평가방법(절대평가 전환, 상대평가 유지, 수능원점수제) 3 가지 사항에 대해서 국가교육회의에서 핵심적으로 숙의 공론화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또한, 추가적으로 학생부종합전형 공정성 제고,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수능 과목 구조, 수시 수능최저학력기준, 대학별고사, 수능 EBS 연계율 등에 대해서는 필요한 경우 결정하거나 의견을 제시해 줄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국가교육회의는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하여 이 중 일부 의제를 다루었지만 대입 경쟁 완화는 교육부가 요구할 때부터 포함되지 않았습니다.

2020년의 한 토론회에서 상지대 김명연 교수도 추첨제를 주장했습니다. 거점국립대학은 연구중심 대학으로 개편하고, 지역 중심 국공립대와 공영형 사립대는 실용학문 중심 교육 대학으로 육성하며, 특성화·전문화한 대학 간 통합네트워크를 구성하고 집중 육성해서 대학 서열을 해소하지고 합니다. 내신과 수능은 절대평가로 해서 경쟁을 완화하고, 권역별 1년 과정 교양대학에 입학·수료한 뒤, 복수의 전공 학부를 신청하면 학생이 선호한 학과에서 추첨제로 공부할 자격을 부여하자는 주장입니다. 그러나 많은 대학을 어디 가더라도 불만이 없게 서울대 수준으로 육성하기 위해서는 예산 확보도 어렵고 그밖에도 상당한 난관이 있을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있습니다.

서울대 등 학생이 가고 싶어 하는 경쟁이 심한 대학에서 졸업정원제를 실시하면 경쟁이 완화될 거라는 주장도 있습니다. 그러나 학생수가 부족해서 충원이 어려운 대학, 전문대학을 두고 일부 대학의 정원을 무한정 늘릴 수는 없다는 문제에 부닥칩니다. 또한 현재 정원으로도 강의실과 실험·실습 시설은 포화상태라고 합니다. 정원을 대폭 늘릴 수는 없는 구조라는 거죠. 이런 조건하에서 현재는 고등학교에서 평가가 절대평가로 바뀐다고 해도 대학은 정원이 있고 경쟁이 있으므로 결국은 상대평가가 됩니다. 대학 경쟁이 없어질 수 없는 구조라는 겁니다.

<참고자료>
조영태(2021). 인구 미래 공존. 북스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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