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입학사정관의 공부법 (146) - 대입제도 개편사(8) 김대중 정부의 대입 개선(2)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코로나 시대의 공부법"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아이의 청해력" 저자

김창현 승인 2023.09.25 22:27 의견 0

김대중 정부의 교육정책 중 지속적으로 영향력을 발휘한 정책을 꼽는다면 ‘무엇이든 하나만 잘하면 대학 간다.’는 슬로건으로 대표되는 성적 제1주의 대입제도 탈피, 학생부 교과성적을 상대평가 성적과 절대평가 성적을 대학에 모두 제공하게 한 것, 교육 정보화를 추진한 것을 들 수 있다.

절대평가 평어를 대학에 제공하기로 한 것은 중요한 시도였고 많은 시사점을 남겼다. 이와 관련하여 서남수, 배상훈 교수의 공저 <대입제도, 신분 제도인가, 교육 제도인가>에서 ‘학교생활기록부 성적의 절대평가와 상대평가>에서 당시의 상황을 상세하게 기술하고 있다(32-43쪽 참조). 학교 교육을 정상화하기 위하여 절대평가를 하려고 했지만 대입에서 사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실무자들의 반대가 있었고, 논의는 평행선을 달리다 결국 두 가지 자료를 대학에 전형 자료로 제공하기로 했다. 그러나 대학이 특목고 등 상대평가 성적이 불리한 학교의 학생들을 염두에 두고 평어를 반영하면서 고등학교 성적은 성적부풀리기로 악화됐다.

대학에서는 수시 입시는 학생부로 평가를 해야 하므로 석차백분율은 사용하고 면접으로 최종 합격/불합격을 결정하는 방식으로 사정했는데, 정시에서는 학생부를 명목상으로는 40% 반영하면서 평어로 반영하여, 학생·학부모는 시험을 쉽게 내서 90점 이상 받게 출제할 것을 학교에 요구하게 되고 학교도 이에 동조하는 상황이 발생했다.

교육부는 2000년 11월에 <2002 대입전형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지금은 기본계획을 1학년 8월에 발표하도록 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고2 학년을 마치기 직전에야 발표한 것이다. 발표 주체도 현재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가 맡고 있지만 당시에는 교육부 고시 2000-12호로 교육부가 직접 발표했다. 기본계획과 함께 달라지는 대입전형에 대한 문답자료도 배부했다. 이 중 학교생활기록부에 관한 내용에 성적부풀리기 관련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문8) 학생부의 반영이 중요시 된다는데 학생부는 어떻게 활용되어지나요?

답)

• 고교에서의 학생에 대한 기록인 학교생활기록부는 학생들의 3년간 활동인 지(교과성적), 덕(품성․봉사․협동 등), 체(체력 등)를 종합 기록하기 위하여 다매식으로 전환되었습니다.

• 또한 절대평가 방식의 과목별 '수․우․미․양․가'의 평어와 상대평가 방식인 '과목별 계열석차'가 함께 병기되고 수행평가 내용도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란에 기록될 수 있습니다.

• 활용 여부는 대학에 완전히 일임되었습니다. 대학은 교과성적만 반영하던 이제까지의 관행에서 벗어나 학생의 특기, 각종 활동, 각종 기록 등을 중요하게 반영하게 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교과성적을 반영하는 경우에도 대학의 특성이나 모집단위의 성격에 관련된 과목을 활용하는 등 학생들의 개성을 존중하는 방향으로 사용하게 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문9) 학교생활기록부의 활용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성적부풀리기’ 등 학교생활기록부의 공정성․객관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견해가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요?

답)

• 고교에서는 학생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는 다양한 도구를 개발하여 적용할 뿐만 아니라 고사관리, 성적처리 등 일련의 평가과정에서 부적정한 사례가 발생하지 않도록 누구나 수긍할 수 있는 공정하고 투명한 평가체제를 구축해야할 것입니다.

• 이를 위해 모든 평가는 학교 및 교과지도 실정에 따라 공동출제, 난이도의 적정 조정 등을 교과협의회 또는 교내 학업성적관리위원회 등의 심의를 거쳐 결정하며, 과목별·단위별 목표, 평가의 내용·수준·․방법 등을 사전 예고하여 충분히 인지할 수 있게 하고, 교차채점·채점기준 공개 등 성적처리의 신뢰도를 확보토록 하며 학생의 이의 신청 기회 부여 등을 통한 채점 결과의 투명성을 확보토록 하겠습니다.

• 뿐만 아니라 대학도 성적부풀리기에 대해서는 대학 자체적으로 기준을 마련하여 불이익을 주거나 전형에 반영한다는 입장을 검토하고 있습니다.(서울대, 연세대 등 주요 7개 대학 입학관리처장과의 간담회, 2000. 4. 25). 특히 학생부에는 절대평가 방식의 수,우,미,양,가 평어 뿐만 아니라 과목별로 계열석차가 기재되므로 이러한 교과기록 내용을 함께 검토하는 등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성적부풀리기에 대해 대처해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 또한 정부도 학업성적 적정 처리를 위한 교원연수를 실시하고, 시·도교육청의 학교 학업성적관리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며, 부적정 사례에 대한 시정조치를 철저히 하여 성적부풀리기로 인한 학교현장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점검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성적에 치중하지 않도록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까지 제공하고 평가는 성취 수준을 고려하여 공정하고 타당하게 진행하고 대학이 성적부풀리기를 방지할 수 있도록 협력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지만, 현실 세계는 기대를 저버리고 말았다.
성적 부풀리기는 성적부풀리기에만 그치지 않고 공부를 조금만 해도 90점을 넘기도록 시험문제를 쉽게 출제하게 되고, 시험문제가 쉽게 출제되니 학생들은 공부를 깊이 있게 하지 않게 되는 문제 상황이 나타나게 되었다.

교육부가 2002 대입전형 기본계획을 발표하기 전 2000년 5월 24일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교육행정연수원·교육학과 주관으로 <2002학년도 새 대학입학제도,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가?>라는 주제의 포럼이 열렸다.
박성익 서울대 교육연구소장(교육학과 교수)은 발제에서 학교생활기록부의 문제점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학교생활기록부는 세 가지 측면에서 문제점으로 안고 있다.

첫째 일선 고등학교에서 성적 부풀리기의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이러한 성적 부풀리기 현상은 현재 일부의 고등학교에서 교과서에 나온 문제를 그대로 시험문제로 출제하는 등 실제로 나타나고 있다. 고등학교의 성적 부풀리기 문제가 대두되고 있는 이유는 내신을 절대평가하는 것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즉, 내신을 절대평가함으로써 시험 문제가 쉬워지고 그로 인하여 학생들의 학습력이 약화되며, 학생들의 학력에 대한 변별력을 약화시키는 것이다.”라고 지적했다.

둘째, 학교 생활기록부에 기재된 내용들에 대한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한 문제

셋째 학교생활기록부의 교과성적만으로 학생을 선발하거나 일부분을 활용할 때 학교 차를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을 지적했다. 이를 보완하기 위한 방안으로 교육청 단위로 학교별 시험문제를 검토하는 방안, 대학이 고등학교별 수능 시험, 대학 입학 후의 학업성적 및 진로 상황 등을 파악하여 반영하는 방안 등을 제시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해결방안은 고등학교에서의 성적관리가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이루어질 수 있도록 연수를 하여 의식 개혁이 이루어질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했다.

토론에서 김상권 교육부차관은 “우리 학교 우리 지역만 손해를 봐서는 안 된다는 이기심과 학부모를 비롯한 지역사회의 압력과 일부 교원들의 쉬운 문제 출제로 성적 부풀리기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 지금의 현실이다. 이러한 일부 학교 의도적인 성적 부풀리기로 학교생활기록부 교과 내신은 대학별 전형과정에서 변별력이 약화될 우려가 있고 지나치게 쉬운 출제로 학력 저하 및 공교육 신뢰도까지 약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하면서 신뢰성 없는 고교에 대해 배학별로 불이익을 주는 방안, 소질과 적성을 중시하는 전형을 권장한다고 했다.
박도순 한국교육과정평가원장은 “학력격차를 반영한다는 것은 학력을 선발의 제1 요소로 한다는 의미인데, 이것은 새 대입전형제도의 취지에 걸맞지 않을 뿐 아니라 고교 평준화 제도가 시행되고 있는 현실을 볼 때 많은 문제가 있을 수 있다. 더구나 당해 수험생의 학력이 아닌 선배들의 학력에 의해 학력 격차를 조정하려는 발상은 매우 위험스럽다. 만일 당해 학생의 대수능에 의해 고교간 격차를 해소하려 한다면 그것도 대수능에 의한 학력 측정 결과의 활용을 최소화하려는 2002학년도 대입전형제도의 취지에 적합하지 않다.”며 “성적 부풀리기 현상은 학력을 대입 전형에서 최소화하면서 발표자가 제안한 대로 성적 관리에 대한 지속적인 교사 연수 및 의식 개혁을 병행하는 방안밖에 없다.”고 했다.


민경찬 연세대학교 입학처장은 “고등학교들 간의 차이를 단순한 고교등급제 또는 전국단위의 고교학력평가를 통하여 하나의 잣대로 비교 평가한다는 것을 적합하지 않다. 고등학교별 설립 취지 등 고교 특성과 대학의 모집단위와의 관계, 교과성적 이외의 전형 자료 및 교육 환경 등을 고려하는 종합적인 관점에서 학교 간 차이의 개념을 이해해야 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학생부 성적을 대입에 비중 있게 반영하는 대입 정책을 추진하면서, 성적부풀리기를 억제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안은 도출되지 못하였고, 관계자의 도덕성에 호소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린 상태에서 2002학년도 대입이 진행되었다. 결국 다음 정부의 대입정책에서 절대평가는 다시 상대평가로 바뀌게 되었다.

또한 당시의 상황은 고교학점제를 시행하면서 모든 과목을 성취평가제로 평가하려고 하는 정책에 대하여 다시 성적부풀리기와 시험문제 쉽게 내기로 변질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상황을 낳고 있다.

참고> 본 연재 92회 고교학점제 때에는 성취평가제(2022.09.05.)에서 <성취평가제와 성적부풀리기> 관련 내용을 다루었음

<참고문헌>
교육부(1998). 새로운 대학입학제도와 교육비전 2002 : 새학교문화창조
교육부(2002). 2002대입전형기본계획. 보도자료(2000.11.30.).
서남수, 배상훈(2022). 대입제도, 신분 제도인가, 교육 제도인가. 성균관대학교 출판부
서울대학교 교육연구소·교육행정연수원·교육학과(2000). 2002학년도 새 대학입학제도, 무엇을 보완해야 하는가. 제5회 관악 교육정책 포럼 자료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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