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입학사정관의 공부법 (103) - 수능 국어를 어떡해?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코로나 시대의 공부법"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저자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2.11.21 09:33 의견 0

수능 1교시는 국어영역입니다. 국어 시험이 어려우면 문제지 위에서 시선이 흔들리면서 내용 파악이 안 되고 머리는 비어갑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습니다. 이어지는 시간도 영향을 받습니다. 하루가 그렇게 허망하게 지나갑니다. 그래서 1교시는 잘 봐야 합니다. 누구나 잘 보게 하려면 시험이 쉬우면 됩니다.


그런데 수능 국어는 수능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시험이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물론 최상위권 학생들의 발목을 잡는 것은 당시는 언어영역이었던 국어였습니다. 수학도 정답자 숫자가 수십만 명 중 몇 백명인 문제도 있었고 영어도 절대평가가 된 지금보다 어렵게 출제된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수학과 영어 영역은 어릴 때부터 준비해 오고 있으므로 공부 좀 하는 학생이라면 이 과목에서 발목이 잡히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수험생에게 주어진 시간은 같으므로 수학과 영어에 많은 시간을 쓰면 국어 성적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지금 수능은 영어가 절대평가가 되어서 촘촘한 변별이 되지 않습니다. 수학도 주로 2학년 때 배우는 수Ⅰ과 수Ⅱ 공통 부분에서 어려운 문제가 나오고 미적분 등 선택과목은 덜 어려운 문제가 나오므로 고득점자가 많습니다. 그에 비하면 국어 고득점자는 줄이 길어 변별이 됩니다. 2022 수능에서는 최고점과 응시생의 4%에 해당하는 1등급 커트라인 점수 차이가 18점이나 되었습니다. 결국 수능 시험은 국어 성적에 성패가 달려 있습니다. 2023 수능에서는 국어영역이 2022 수능보다 좀 쉬웠다고 합니다. 좀 쉬웠다는 문제라고 해서 풀기가 쉬웠던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면 “행정 법령은 행정청이 구체적 사실에 대해 행하는 법 집행인 행정 작용을 규율한다. 법령상 요건이 충족되면 그 효과로서 행정청이 반드시 해야 하는 특정 내용의 행정 작용은 기속 행위이다. 반면 법령상 요건이 충족되더라도 그 효과인 행정 작용의 구체적 내용을 고를 수 있는 재량이 행정청에 주어져 있을 때, 이러한 재량을 행사하는 행정 작용은 재량 행위이다.”라는 글을 읽고 “윗글의 내용과 일치하지 않는 것은, 윗글을 바탕으로 <보기>를 이해한 내용으로 가장 적절한 것은?”과 같은 문제를 풀어야 합니다.

이어지는 과학 제시문의 글도 만만하지 않습니다. “체중의 증가율에 비해, 기초 대사량의 증가율이 작다면 L-그래프에서 직선의 기울기는 1보다 작으며 기초 대사량의 증가율이 작을수록 기울기도 작아진다. 만약 체중의 증가율과 기초 대사량의 증가율이 같다면 L-그래프에서 직선의 기울기는 1이 된다.”와 같은 글입니다. 또한 선택지는 맞고 틀림을 분별하기가 쉽지 않은 말들이 나열되어 있습니다.

국어 영역에는 독서뿐 아니라 문학도 있고 선택으로 문법 영역도 포함되므로 모든 분야의 공부를 확실히 해두어야 하지만, 국어 시험을 잘 보려면 우선 체감 난이도가 높은 부분은 독서에 있으므로 독서 역량을 높여야 합니다. 독서 역량은 하루아침에 늘지 않습니다. 매일 꾸준히 글을 읽고 비판적으로 바라보고 정리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학교에서는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고3까지 10년간 글을 요약하고(생각 간추리기), 비판하며(생각 나누기), 자신의 의견으로 만드는(생각 정리하기) 공부를 합니다. 어휘는 점점 어려워지니 사전을 찾아가면서 글을 읽으라고 말합니다. 글의 길이도 점점 길어져서 나중에는 단행본 책을 읽고 독후 활동을 합니다.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다는 말을 명심하고 매일 일정 시간 독서활동을 해야 합니다. 배경지식도 중요하므로 사회, 과학 공부에도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배경지식이 중요하다고는 하지만 시험에 나오는 특정 영역의 제시문이 알고 있는 분야의 글일 가능성은 별로 높지 않습니다. ‘지난해에는 경제에서 문제가 났고 올해에는 법 분야에서 문제가 났으니 다음 해에는 정치에서 문제가 나든가 혹은 지리나 역사에서 문제가 날 거야.’ 하고 예측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이 문제들이 EBS 교재와 연결된 문제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수능을 준비하는 단계에서는 EBS 교재에 나오는 제시문을 보고 관련된 지식을 좀 더 전문적으로 공부를 하면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EBS 교재가 수능 국어 독해의 방향성을 제시하고 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은 문해력을 갖추는 것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수능 전날의 모임에서 만난 선생님들께 내일 수능 국어 문제 풀거라고 했더니 그걸 왜 푸느냐는 답이 돌아 왔습니다. 국어 공부와 수능 국어 공부는 다르다는 생각인가 봅니다. 수능 국어는 국어과 학습목표에 적합한 시험일까 의문입니다. 특정 분야에 대한 정보 밀도가 높은 짧은 글을 순식간에 읽고 보기에서 정답을 고르는 것은 국어 학습의 목표와 잘 맞지 않습니다.

대학 공부를 기준으로 보면 수능 국어 시험이 대학생이 되어 책을 읽고 의미를 파악하며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 가는데 얼마나 적합한 시험인지 의문입니다. 어쩌면 수능 국어 공부를 하면서 미세하게 글을 읽는 동안 글의 의미를 분절하는 습관이 들고 독자의 생각은 파편화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앞으로 4년 더 이런 시험을 보아햐 아는 것이 숙명이라 해도, 이제 대입전형을 개선해야 하는 그 뒤부터라도 이런 방식으로 평가하지는 말아야 합니다.

저작권자 ⓒ 동작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