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입학사정관의 공부법 (92) - 고교학점제 때에는 성취평가제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코로나 시대의 공부법"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저자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2.09.05 13:52 | 최종 수정 2022.09.13 13:40 의견 0

“실패를 두려워하지 말고 도전하라. 편안하고 안전한 길을 거부하라. 타협하지 말고 자신의 진짜 꿈을 좇아라. 모두 좋은 조언이고 사회의 입장에서는 특히나 유용한 말입니다만, 개인의 입장은 다를 수 있음을 여러분은 이미 고민해 봤습니다. 제로섬 상대평가의 몇 가지 퉁명스러운 기준을 따른다면, 일부만이 예외적으로 성공할 것입니다.”


수학계의 노벨상으로 불리는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미국 프린스턴대학교 교수가 서울대학교 후기 졸업식에서 한 축사가 감동을 주었습니다. 상대평가를 제로섬이라고 표현하고 이어서 이 체제 안에서 타인뿐 아니라 심지어 자신이 스스로에게 모질게 굴더라도 하루하루를 온전히 경험하라고 하고 그 결과 미래 시점에 아쉬움이 없었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주목하고 싶은 말은 ‘제로섬 상대평가’입니다. 상대평가 체제에서는 일부는 성공하고 대부분은 실패합니다. 실패를 피하기 위해 쉬운 길을 찾기도 합니다. 고등학교 성적도 상대평가를 버리려고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1. 성취평가제 전환이 필요한 이유

한 학년에 100명이 있는데, 이 학생들을 1등부터 100등까지 줄을 세우는 방식의 평가는 경쟁을 심화시킵니다. 다른 이의 실수와 불행이 나의 행복이 됩니다. 더구나 여러 과목의 성적을 합한 총점을 기준으로 줄을 세울 때는 경쟁이 더 심합니다. 어느 한 과목에서도 숨을 쉴 틈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경쟁을 완화하기 위하여 2000년대 초반에는 총점 석차를 산출하지 않고 과목별 석차를 산출했었습니다. 그렇지만 대입 전형에서 과목별 석차를 중심으로 총점 석차를 구해 전형요소로 사용하기도 했기에 경쟁 완화 의도가 반영되지 못했었습니다.

그래서 경쟁을 완화하기 위해 등급제로 성적 산출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100명 중 4%인 4명은 1등급이고 같은 위치를 갖습니다. 11%까지는 2등급입니다. 5등부터 11등은 같은 성적을 갖는 방식입니다. 그래도 경쟁이 크게 완화되었다고 하기는 어렵습니다. 근본적으로 상대평가이기 때문입니다. 학생은 정원이 많은 학교, 수강자 수가 많은 과목, 나보다 못하는 친구들이 더 많은 과목을 선택하는 부작용이 있습니다. 공부 잘 하는 학교와 공부 못 하는 학교 중 어떤 학교를 선택해야 하는지도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성취평가제를 도입하려고 합니다.

성취평가제를 적용하면 학생은 어려운 과목에 도전했을 때 도전한 가치를 인정받게 됩니다. 학생부 종합전형에서는 학생이 어떤 과목을 공부했는지를 근거로 성취 정도와 도전 정신을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눈치 보지 않고 좋아하는 과목을 선택해서 잘 하면 됩니다. 다른 동료들의 성적과 관계없이 자신의 실력에 따라 성적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이 성적을 사용하는 데는 문제가 없다고 해도 실제로는 문제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학생부 교과전형에서 우리 학교 아이들이 더 좋은 성적으로 대학에 진학하게 하려고 성적 부풀리기를 합니다. 시험을 쉽게 내달라는 학부모 요구도 큽니다. 일부 학생의 등급을 높이기 위해 많은 학생이 성적을 깔아주도록 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하는 현상도 나타납니다. 수강자수를 늘리기 위해 많은 과목을 폐강하기도 합니다. 시험이 쉬워지고 학습 수준이 낮아집니다. 그래서 학생부 교과전형이 어려워질 가능성이 크므로 교과전형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반대도 있습니다. 대학은 같은 성적이라면 특목고나 자사고 학생을 더 선호할 것이라는 의심도 걸림돌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경쟁을 벗어나 협력을 해야 하고, 협력을 경험시키려면 절대평가를 해야 합니다. 상대평가와 협력 교육은 철학이 안 맞습니다. 자기가 좋아하는 과목을 고를 수 있게 하려면 절대평가를 해야 합니다. 고등학교 성적 산출 방식의 변화 역사는 이 고민을 보여줍니다.(미주참조)

2. 성취평가제 전면 도입의 선결 과제

성취평가제 성적이 대입전형요소로 쓰이게 되려면 등급을 가르는 기준이 명확해야 합니다. 가 학교의 A는 나 학교에서도 A이고, 가 학교의 B는 나 학교에서도 B이어야 합니다. 이는 교사의 평가 전문성에 기반을 둡니다. 교사는 학생이 각 과목에서 지식, 정보를 습득하고 이를 적용하여 문제를 탐구하고 발표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학생의 성취 수준을 잘 가를 수 있는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또한 성취 수준을 잘 가른 결과뿐 아니라 학생은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도 제공할 수 있는 역량도 있어야 합니다. 서술된 정보는 학생이 자신의 학습을 성찰하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대입전형요소로 학생부 종합전형에서 중요한 자료가 됩니다.

학교에서 한 평가에 공신력을 부여하는 방식을 도입할 수도 있습니다. IBDP에서의 평가처럼 외부에서 평가를 검증하는 방식을 도입할 수도 있습니다. IBDP(International Baccalaureate Diploma Programme:국제 바칼로레아 진학형 고등교과 과정) 성적이나 AP(Advanced Placement:대학과목선이수제) 성적처럼 공인된 성적은 그 자체로 공신력을 갖습니다. 한편 공인성적이 제공되지 않는 교육과정을 운영하는 학교에서는 대학에 학교 성적만 제공하기도 하지만, 절대평가에서 각 등급의 비율 범위를 제공하거나, 상급학교 진학 실적을 제공하는 등 평가 결과의 공신력을 각자의 방식으로 확보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이 방식을 모든 학교에 강제하지는 않습니다.

학교생활기록부 기재 방식도 개선되어야 합니다. 세부능력 및 특기사항은 대입 반영을 위해 특기사항 위주로 기록되는데 이를 성취 기준에 의한 성취특성과 수준을 기술하는 방식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2022년 8월에 열린 2022년 제1차 고교학점제정책포럼에서 이승연 서울대 수석입학사정관은 학교생활기록부 기록은 ‘학교 교육과정의 목표에 따라 수업을 설계하고 학습 활동 안에서 학생이 나타낸 수행의 과정과 결과를 작성한 기록’으로 ‘관찰 평가, 프로젝트 평가, 보고서 평가, 동료평가, 등의 과정 중심의 평가를 수업에 적용하고 학생부 기록에 활용’해서 기록된 것이어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학생부는 대입 자료만이 아닌 학습 과정의 기록과 피드백 역할을 하여야 하며, 대입 맞춤형 기록은 지양해야 한다고도 했습니다. 대입을 위한 학생부 기록은 학생부 종합전형의 안정적 운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역설입니다.

특정 유형 학교에 유리하게 적용될 것이라는 것은 논란이 됩니다. 대중은 과거 입학사정관제 시절에 대부분 학교는 수능 대비 중심으로 수업을 운영하고 자사고와 특목고는 별도의 프로그램을 운영하여 입시에 대비했던 시대를 기억하며 우려합니다. 그러나 학생부 종합전형은 성취 기준에 따른 성취 수준과 학습 방식 및 학생의 자존감과 열망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는 전형이므로 입학사정관 입장에서 보면 굳이 특목고나 자사고 학생을 선호할 이유가 없습니다. 정시 확대 기조와 교과전형에 수능 최저 반영 확대 경향으로 학교가 수능 대비에 더 치중하게 되고 있는 현재의 문제점이 해소되면 고등학교 수업은 교육과정이 의도하는 대로 전개될 것이고 그렇게 된다면 일반고 불리 주장은 극복될 것입니다.

교과전형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주장은 현재 학교장 추천 지역균형 교과전형을 운영하는 경우에 해당합니다. 이 전형에는 각 학교에서 교과평점이 우수한 학생이 지원하는데, 이는 상대평가를 전제로 합니다. 성취평가제를 전면 도입하면 이 전형은 다른 방식으로 개선될 것입니다. 현재도 동국대 등이 교과전형이지만 교과 정량 성적보다는 정성평가 성적을 더 중시하는 전형을 운영하는데 이런 방식이 원용될 수 있습니다. 2024 대입 전형 시행계획을 보면 비수도권은 59.9%의 학생을 교과전형으로 선발하는데, 이는 현재 진로선택과목 평가 방식을 이용해서 전형을 설계할 수 있을 것입니다.


3. 기타 우려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는 우려가 있습니다.
변동분할 방식을 사용하면 기준 점수 설정 권한을 담당 교사가 갖게 되므로 민원이 폭주할 가능성 있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교사는 기준 점수를 설정한 근거를 객관적으로 제시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것입니다. 변동분할 방식의 성적은 대학에서 신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대학은 전형에서 평어를 사용하지 않고 원점수 평균 수강자수를 반영하여 보정 점수를 사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고등학교에서는 등급 비율을 조장하기 위해 고심할 것입니다.

성적부풀리기 현상은 변동분할이든 고정분할이든 여전히 문제가 될 것입니다. 성적부풀리기 현상이 나타나면 대학은 원점수 평균 수강자수를 반영하여 보정 점수를 사용할 것이고 역시 성취평가제의 문제점으로 부각될 것입니다. 한편 성적 부풀리기를 하면 종합전형에서는 학생이 불이익을 받을 수도 있어서 고등학교에서 성적부풀리기가 침소봉대 될 수는 있지만 대세가 되지는 않을 것입니다.

대학은 정원만큼 선발하기 때문에 경쟁이 있습니다. 학생은 어쩔 수 없이 변별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러다보니 평가 성적이 자신의 정상 성적보다 좋게 보이기를 바라게 됩니다. 그런데 학생부종합전형에서는 입학사정관이 학생부를 보고 학생의 성취 정도를 판단합니다. 포장을 하는 것이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고 보면 학생의 학업 성취에 대한 평가가 학생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적용될 수 있는 방식이 바람직합니다. 대학이 학생부를 평가하는 것을 권력이라고 비난하지만 상대평가로 학생을 줄 세우는 것이 더 권력이 아닐까요?

<미주>

적 산출 방식의 변화

1998년 김대중 정부는 2002학년도 대입에서 교과 성적 반영 방식과 수능 성적 제공 방식을 개선하기로 했다. 교과 성적은 평어와 과목별 계열 석차를 산출했는데, 평어는 절대평가 성적이었다. 대학에서는 수시 전형에서 주로 계열 석차를 반영했지만 정시 전형에서는 평어를 반영했다. 그런데 당시에는 정시 선발 비중이 70%가까이 되어 평어를 잘 받아야 대학 갈 수 있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2002년 대입제도 개선에 대하여 2000년에 제시한 보도자료 중 <2002학년도 대입제도 관련 문답집>에서 이미 이러한 경향에 대한 우려가 나타났다.

문9) 학교생활기록부의 활용 가능성이 높아짐에 따라 ‘성적부풀리기’ 등 학교생활기록부의 공정성․객관성 문제가 더욱 심각해진다는 견해가 있는데 이에 대한 대책은 무엇인가요?

답)
• 대학도 성적부풀리기에 대해서는 대학자체적으로 기준을 마련하여 불이익을 주거나 전형에 반영한다는 입장을 검토하고 있습니다.(서울대, 연세대 등 주요 7개 대학 입학관리처장과의 간담회, 2000. 4. 25.). 특히 학생부에는 절대평가 방식의 수,우,미,양,가 평어뿐만 아니라 과목별로 계열석차가 기재되므로 이러한 교과기록 내용을 함께 검토하는 등 다양한 기준을 가지고 성적부풀리기에 대해 대처해 나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 또한 정부도 학업성적 적정처리를 위한 교원연수를 실시하고, 시․도교육청의 학교 학업성적관리에 대한 지도를 강화하며, 부적정 사례에 대한 시정조치를 철저히 하여 성적부풀리기로 인한 학교현장의 문제를 지속적으로 점검해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다 노무현 정부 들어서 2004년에 2005년 고등학교 입학생부터 교과성적을 9등급제로 산출하는 방식으로 바꾸었다. 표면적으로는 석차를 등급으로 바꾸었기에 경쟁을 완화한 것이라고 하겠지만, 대입에서 주로 평어를 사용했던 상황을 고려하면 절대평가에서 상대평가로 경쟁이 강화된 것이다. 이 9등급제가 지금도 유지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개선해야 할 대상으로 지적되어 왔다.

교육부는 2011년 12월 ‘창의‧인성교육 강화를 위한 「중등학교 학사관리 선진화 방안」에서 고교 석차 9등급제 평가를 성취평가제로 전환하기로 하고 이 성적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록했다. 고등학교는 2014학년도 보통교과 전체에 성취평가를 도입하기로 했다. 성취평가제는 ‘원점수/과목평균(표준편차)’를 병기하면서 6단계 성취도(A-B-C-D-E-(F))를 기재하는 방식이었는데, 대입 전형에 제공하는 정보는 9등급 성적과 원점수/과목평균(표준편차) 성적을 유지했다. 성취평가제 성적이 대입 전형요소로 제공하기로 예정된 것은 2017학년도 대입이었다.

이후 대입에 반영하기로 예정된 성취평가제는 계속 반영을 유예했다. 2013년 10월 대입제도간소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성취평가 결과의 대입 반영을 유예하기로 했고, 2019학년도 이후의 성취평가 결과 대입 반영은 2015학년도에 결정한다고 했다. 2015개정 교육과정을 발표하면서 새로운 대입제도와 성적처리 기준을 다시 마련할 계획이었다.

2015년 9월, 2015 개정 교육과정을 고시할 때에는 고등학교 보통교과 성취평가제 반영 방안을 2017년에 종합적으로 발표할 계획이라고 했다. 2017년 8월, 2015개정교육과정에 따른 대입제도 개편안이 반대에 부딪히자, 이를 연기한다고 할 때에는 ‘고교학점제, 내신 성취평가제, 고교교육 정상화 방안 및 대입정책 등을 포괄하는 ‘새 정부의 교육개혁 방안’을 2018년 8월까지 마련할 계획‘이라고 하면서 다시 한 번 성취평가제 반영을 유예했다. 2018년에 발표한 2022 대입개선방안에는 성취평가제 대입 반영과 관련된 언급은 없었고, 고교학점제를 도입하면서 2028대입에 사용할 수 있도록 2025년 고등학교 입학생부터 성취평가제를 실시하고 대입전형 요소로 제공한다고 발표했다.

한편 2015개정교육과정에서 2019학년도 고등학교 입학생부터 진로선택과목은 3단계 성취평가제를 적용하여, 2022대입부터 전형요소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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