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입학사정관의 공부법 (73) - 입시는 교육과정에 달려 있어요(1)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코로나 시대의 공부법"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저자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2.04.25 09:30 | 최종 수정 2022.05.30 23:02 의견 0

교육과정이라는 용어가 널리 쓰이게 된 건 2002학년도부터 고등학교에 적용된 제7차 교육과정부터였습니다. 그 이전에는 주어진 과목을 주어진 시간표에 따라 공부했기 때문에 교육과정이 무엇인지를 알 필요가 없었죠. 그런데 학생이 과목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고등학교 교과 운영이 바뀌게 되자 교육과정을 알아야 할 필요가 생겼습니다.

제7차 교육과정은 학생선택형 교육과정인데 배우는 과목에 선택이 있다는 것을 대학 공부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해가 빨랐겠지만 20년 전의 고등학생 학부모는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학 다닌 사람이 적었던 거죠. 그러나 현재 고등학교 학부모는 대학 진학률이 거의 80%에 달했던 시절을 살아 왔으므로 선택 교육과정을 잘 이해하고 있습니다. 고교학점제에 대한 이해가 빠른 이유도 같다고 봅니다.

그런데 엄마가 고등학교 시절에는 표준화된 시험인 학력고사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대입 전형요소의 전부였으므로, 학생이 배울 과목을 선택해야 할 필요가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나라 고등학교는 고등학교라는 제도가 생긴 이후로 대입을 준비시키는 공부에서 한 때도 벗어난 적이 없었는데, 학력고사나 수능은 개인이 과목을 선택해서 대학 가는 방식이 아니었으므로 학교에서 과목을 선택하라고 할 이유도 없었던 겁니다. 그러다가 학생부종합전형으로 선발하는 비중이 늘자 어떤 과목을 어떻게 배웠는지를 평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육과정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엄마는 선택 교육과정은 이해하지만 학종에서 어떤 선택을 원하는지는 이해가 부족합니다. 각 대학은 학생부종합전형 안내 자료를 매년 제작해서 제공하고 있는데, 이 자료를 보면 대입과 교육과정과의 관련성을 잘 알 수 있습니다.

동국대학교가 제공한 자료에는 두 학생을 비교해서 어떤 학생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지를 물었습니다. 자료에는 성적은 제공되지 않았는데, 만약 성적이 같았다고 가정한다면 어떤 학생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을까요?

동국대는 B 학생이 더 좋은 평가를 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두 학생이 이수한 과목에서 가장 큰 차이는 전문교과의 이수여부입니다. 이와 관련한 동국대의 설명을 들어볼까요?

“A학생이 속한 학교는 ‘소프트웨어’와 관련한 다양한 교육과정을 개설한 노력이 돋보이는 학교이며, 학생은 이를 적극적으로 선택하여 이수하였습니다. B학생은 일반적으로 고교에서 이수할 수 있는 보통교과의 수학 및 과학교과를 이수하였습니다. 두 학생 모두 합격한 사례이지만, 입학사정관들에게 더 좋은 평가를 받은 학생은 B학생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고등학교 때 공부는 차근차근, 넓게 해야 합니다. ‘차근차근’이란 위계를 지켜 공부하는 것을 말합니다. 쉬운 과목부터 어려운 과목, 쉬운 수준부터 어려운 수준으로 수준을 높여가는 것을 말합니다. ‘넓게’란 ‘깊게’와 대비되는 말입니다. 과학을 배운다면 화학이 필요한 학과에 진학한다고 화학만 공부하지 말고 물리학, 화학, 생명과학, 지구과학 모두를 두루 공부해서 바탕을 넓히라고 서울대도 안내자료에서 조언했습니다.

“화학을 전공한다고 해서 화학 공부만 하는 것은 권장하지 않습니다. 당연히 화학을 전공하고자 하는 학생이라면 깊이 있게 화학을 공부하는 것은 상식입니다. 그러나 <물리학>, <생명과학>, <지구과학>의 학문 분야는 사실 매우 긴밀하게 얽혀 있습니다. 단일 전공만으로는 전문성이 떨어지고 연구 주제가 한정되기에 두 개 이상의 분야의 지식을 응용할 수 있도록 미리 지식 기반을 다져놓는 차원에서 공부를 소홀히 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또 이런 말도 남겼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확실한 흥미와 신념을 갖고 정진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도 좋을 수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때, 다양한 가능성을 포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고등학교에서 배우는 기초 과목들을 탄탄하게 공부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시 동국대 안내자료로 돌아가보면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을 볼 수 있습니다.

“위계를 무시한 채, 과목명에서 ‘멋짐’만을 기준으로 과목을 선택하였다면, 입학사정관들은 평가 시 다음과 같은 우려와 함께 깊은 고민을 합니다.

가) 선행되어야할 개념의 이해 없이 이 과목을 제대로 학습할 수 있을까?
나) 개념을 확장하는 학습이 아닌 과거 배운 내용을 복습하는 문제풀이 중심의 수업인 것은 아닐까?

핵심은 학교는 학생의 과목 선택권을 보장하고, 학습의 위계에 맞춘 교육과정을 운영해야 하며, 학생은 제공된 교육과정에서 본인의 진로에 맞춰 과목을 선택하여 스스로 역량을 키우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학교도 학생도 교육과정의 정도가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을 해야 할 시점입니다.

학생이 잘 배운다는 말의 뜻을 이해하고 나서 학교는 학생이 최대한 차근차근 넓게 배울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하는 한편 더 많은 경험을 할 수 있는 여분도 마련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음식에 올리는 고명이 음식보다 많으면 안 되듯, 주객이 전도되면 안 됩니다. 학생도 선택을 통해 실력을 기르면서 다른 친구와는 다른 모습으로 성장해야 하지만 기본기는 탄탄해야 합니다.

참고
2023 동국대학교 학생부위주전형 가이드북
2023학년도 서울대학교 학생부종합전형 안내
2015 개정 교육과정에 따른 고교생활 가이드북(개정판). 서울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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