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립스틱 하우스(1) 어머니의 꽃

한 요양병원의 시한부 소녀환자의 손에서 떠나지 않던 빨간 립스틱… 그녀는 얼마 남지 않는 날들의 희망을 립스틱으로 그려갔던 게 아닐까? 정한일 작가의 <립스틱 하우스>는 그렇게 지어졌다. 간병 5년차… 그의 일기를 펼친다.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1.10.11 15:18 | 최종 수정 2021.10.15 18:59 의견 0

차례
1. 5월 9일 어머니의 꽃
2. 5월 13일 소변을 받으면서
3. 5월 16일 974호실의 하루
4. 5월 17일 빗소리처럼
5. 5월 18일 974호실의 흑역사(黑歷史) 1
6. 5월 20일 974호실의 흑역사(黑歷史) 2
7. 5월 21일 974호실의 흑역사(黑歷史) 3
8. 5월 24일 가위바위보
9. 5월 25일 코를 골다
10. 5월 25일 똥의 화증(火症)
11. 5월 26일 아이들에게
12. 5월 29일 어떡하지?
13. 5월 29일 맡기다
14. 5월 31일 리포트 - 식욕에 관하여
15. 5월 31일 연애꾼처럼
16. 6월 01일 파랑새 면회 가기
17. 6월 02일 일희일비(一喜一悲)
18. 6월 04일 리포트 - 운동에 관하여
19. 6월 05일 립스틱이 필요해
20. 6월 06일 립스틱으로 그린 집


5월 9일 어머니의 꽃

"바깥에 꽃 피었니?"

"네, 철쭉꽃 한창이에요."

"봄 다 가지 않았어?"

"아뇨, 이제 철쭉꽃 활짝 피었어요."

"밖엘 못 나가 잘 모르겠구나. 꽃 피었어?"

"네, 철쭉꽃 활짝 피었어요."

"그래? 올봄은 꽃도 잘 못 보고 지나는구나."

"밖에 한번 나갈까요?"

"글쎄, 나가보곤 싶은데 걸음이 안 놓여."

"요 앞에도 꽃 활짝 피었어요."

"봄 아직 안 갔어?"

"네, 아직 안 갔어요."

"그런데 안에서 피던 꽃은 어떻게 됐니?"

"무슨 꽃 말이에요?"

"안에서 피다 밖에 나간 꽃 말이야."

어머니께서 눈이 자꾸만 작아지신다. 자꾸만 작아져 이젠 아주 안 보이시는 모양이다. 눈앞에 꽃 핀 줄을 몰라... 가슴에 핀 꽃만 보시는 모양이다. 봄이 갈까봐… 봄 가면 꽃 질까봐… 품에서 꽃 떠날까봐 노심초사 걱정이 태산 같으시다.

"네 아버지 아직도 안 오셨어?"

"예, 아직 병원에 계세요."

"그럼 날 좀 네 아버지한테 데려다주련?"

화창한 봄날 병원에 모시고 가니 어머니께서 그저 한 말씀만 하신다.

"여보, 나 보이우? 보고 싶어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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