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입학사정관의 공부법 (155) - 대입제도개편사 (16)서울대, 2005 대입에 적용할 ‘교과목별 최소 이수 단위’를 제시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코로나 시대의 공부법"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아이의 청해력" 저자

김창현 승인 2023.11.27 18:46 의견 0

고등학교 2, 3학년의 교실 수업은 대학입시를 향하여 집중되어 있다. 눈 앞의 대입을 앞두고 대입에 필요하지 않은 과목을 수업하는 것은 학생의 흥미를 이끌 수 없다는 데에 문제가 있다. 학부모의 항의에도 학교가 견딜 수 없다. 교사도 열성을 다할 수 없다. 심도 있는 내용을 지도하기도 어렵다. 학생이 수업에 참여하지 않고, 평가 문항을 쉽게 해도 대입애 반영되지 않으므로 포기해 버린다. 쉽게 출제해도 ‘가’를 맞는 학생이 많은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결국 수능과 내신에 포함되지 않는 수업은 부실해지기 마련이다.


2005학년도 수능은 사회탐구, 과학탐구와 직업탐구를 분리해서 응시하도록 했다. 사회와 과학을 먼저 선택한 뒤 사회 11 과목과 과학 8 과목 중 각각 4 과목을 응시한다. 또한 실제로 대입에 반영되는 과목 수는 두세 과목에 불과하다. 학생부 교과 반영에서도 대부분의 대학은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 중에서는 국어, 사회, 수학, 과학, 영어 교과를 반영하고, 선택중심 교육과정 중에서는 인문계열 대학에서는 국어, 사회, 영어 교과를, 자연계열 대학에서는 수학, 과학, 영어 교과를 반영한다. 이에 따라 고등학교의 인문과정에 개설된 과학 교과와 자연과정에 개설된 사회 교과의 수업은 부실하게 운영되었다. 부실 운영 이전에 편성조차 되지 않기 시작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2002년 8월 2일 2005학년도 대학 입학 전형 방안을 마련하여 발표했다. 여기에서 서울대는 제7차 교육과정의 취지를 살려 특정한 과목을 지정하지 않는다고 전제한 뒤, 과목별 기본 소양을 갖추도록 하기 위해 교과목별 최소 이수단위를 제시한다고 했다.

이 발표가 있자, 대부분의 고등학교에서 교육과정의 편성에 어려움을 토로했다. 2002년 8월에는 대부분의 고등학교가 2002학년도 입학생의 2, 3학년에서 학습할 선택중심 교육과정 편성을 마무리하고 교과서를 신청해야 할 시점이었다. 많은 고등학교에서 이미 편성을 마친 교육과정은 인문과정에는 사회가 자연과정에는 과학이 최소로 편성되거나, 아예 편성되지 않은 교육과정이었다. 자연계열에는 제2외국어도 편성하지 않은 학교도 많았다. 서울대학교는 시기적으로 늦게 ‘교과목별 최소 이수단위’를 제시하면서 사회 12 단위, 과학 16 단위를 이수하도록 했다. 따라서 고등학교에서는 심화선택과목의 사회, 과학 과목을 달리 편성해야 했다.

물론 서울대가 제시한 최소 이수 단위는 서울대 지원자에 한한 요구였지만, 학교는 모든 학생이 이수하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해야 했다. 누가 서울대에 지원할지 알 수 없어 민원의 대상이 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대 지원자수를 늘리려면 서울대의 요구를 누구나 충촉할 수 있도록 교육과정을 편성해 두어야 했던 것도 무시하지 못했다.

한편 서울대가 제시한 안은 교과목별 최소 이수 단위가 지나치게 많아 학교 교육과정 편성에 어려움이 있어 학교는 고민에 빠졌다. 이에 따라 서울교육청에서는 서울대에 제시안을 철회 또는 조정해 주도록 요구하게 되었다. 서울대학교에서는 2002년 9월 11일 여론을 반영하여 조정안을 마련하여 발표했다. 그 내용에 따르면 사회 교과에 도덕 교과를 포함시켜 사회․도덕 교과(22단위)로, 과학 교과에 기술․가정 교과를 포함시켜 과학․기술 교과(22단위)로 조정한다는 것이다. 또한 도덕 교과와 기술․가정 교과의 경우 국민공통 과목도 포함할 수 있으며, 실질적으로 필요 최소 이수 단위를 총 122단위로 조정한 것과 같다고 했다. 이에 따라 다음과 같이 제시되었다.

결국, 학교에서는 인문과정에 과학, 기술․가정 과목으로 2과목, 자연과정에는 사회과목 1~ 2 과목을 편성하게 되었다.

서울대학교가 최소 이수 단위를 제시하여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제동을 건 데 대하여 서울대가 고등학교 교육과정에 지나치게 간섭을 했다는 견해도 있었고, 교육부나 시·도교육청 차원에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점을 서울대가 나서서 해결해 주었다는 견해도 있었다.


서울대학교에 문제가 있다는 의견은 몇 가지가 있다.

1) 제7차 교육과정은 학교가 상위 지침에 따라 학생에게 선택을 제시하고 학생 선택을 존중하며 학교 지정과목을 둘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이에 대하여 서울대학교가 나서서 최소 이수 단위를 제시하여 고등학교 교육과정 편성에 영향을 주는 것은 지나치게 권력을 행사하려는 것이다.

2) 제7차 교육과정에서는 10학년까지의 국민공통기본 교육과정에서 사회, 과학 교과뿐 아니라 전 영역에 걸친 균형적인 교육을 하고 있으며, 11, 12 학년에서는 ‘선택과 집중’의 취지를 살려 심도 있는 수업을 하고 있다. 이에 대하여 서울대학교가 선택중심교육과정의 취지에 어긋나는 제약을 가하는 것은 월권이다.

3) 학교가 사회․과학 과목을 지정하여 2~3 학년에 전교생을 대상으로 이수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될 때, 학교가 지정하면 될 것을 서울대가 우려하고 나서는 것은 고등학교 교육에 대한 지나친 간섭이다.

그러나 서울대가 잘하고 있다는 의견도 있었다. 서울대의 2002년 8월의 안은 학교 교육과정을 지나치게 제약하는 것이어서 문제점이 있지만, 9월의 개정안은 교육과정 편성의 문제를 해소시킬 수 있는 좋은 방안이라는 견해이다.

교육부는 제7차 교육과정의 정신에 바탕을 두고 선택과 집중을 강조하면서 창의력, 문제 해결력을 주장하고 있기 때문에 사회 과학 과목 최소 이수 단위를 지정할 수는 없을 터인데 서울대가 그 중간 단계에서 완충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서울대를 옹호한다. 서울대가 아니라면 11, 12학년에서의 사회, 과학 교육은 편식 현상을 보였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이후 서울대는 교육과정이 개편될 때마다 최소 이수 단위를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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