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학년도 대입제도는 1996학년도와는 많이 달랐다. 종합생활기록부는 1997학년도 대입에 한하여 40% 의무 반영하고 이후에는 반영 여부, 반영 비율, 반영 방법을 대학 자율로 결정하도록 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230 문항(언어 5, 수리·탐구Ⅱ 20, 외국어 5 문항 확대)이 되었고, 시간도 30분이 늘어 390분(언어, 수리·탐구Ⅰ, 수리·탐구Ⅱ 각 10분씩 연장)이 되었다. 200점 만점에서 400점 만점으로 변경하고 문항당 차등 배점을 하였다.
수리·탐구Ⅰ 영역에 주관식 20%를 출제하였고, ‘전체·영역별 원점수와 계열별 백분위 점수 표시’를 ‘전체·영역별 원점수와 계열별·영역별 백분위 점수 표시’로 변경했다. 대학별 고사는 대학이 자율 결정하여 시행하도록 했으나, 국영수 위주의 필답고사는 폐지하였다. 이에 따라 일부 대학이 논술고사를 실시했다. 또한 계열별, 학과별 특성에 따라 면접, 구술고사, 신체검사, 실기, 실험고사, 교직 적성, 인성검사 병행하도록 했다.
1997학년도 입시 일정을 보면 특차와 수시가 있었고 정시와 추가모집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은 1996. 11. 13(수)에 시행, 1996. 12. 7(토)까지 성적을 통지했다. 이어서 특차 모집이 1996. 12. 11 - 12. 14까지 4일간 이루어졌다. 특차 합격자 발표 이후 정시 모집을 했는데, ‘가’ 군 : 96. 12. 26 - 12. 30 (5일간)을 시작으로 ‘나’ 군 : 97. 1. 3 - 1. 7 (5일간), ‘다’ 군 : 97. 1. 8 - 1. 12 (5일간), ‘라’ 군 : 97. 1. 13 - 1. 17 (5일간)이 진행되었다. 한 번에 4개 군에 지원하고 합격한 곳 중 선택하여 등록하는 방식이 학부모에게는 낯설었다. 그러다보니 가군에 지원한 다음 불합격하면 나군에 지원해야 하는 거 아니냐는 문의가 이어졌었다.
수시 모집은, 3월 입학의 수시 모집은 96. 11. 1 - 12. 10까지 기간 중에 모집하지만, 3월 입학이 아닌 경우 97. 3. 1 - 98년도 특차 모집 전까지 그야말로 수시로 선발할 수 있었다. 추가 모집은 1997. 1. 27 - 2. 28까지의 기간 중에 대학 자율 결정하도록 했다.
이 대입제도는 1997학년도에 적용되기 시작하여 1997년도의 1998 대입에도 유지되었다. 1997년 12월에는 김대중 대통령이 당선되었고, 이어 김영삼 정부는 제7차 교육과정을 고시하고 물러났다. 김대중 정부는 교육과정에 한해서는 김영삼 정부의 의지를 이어갔지만, 대입제도는 크게 바꾸려고 했다. 김대중 정부는 1998년 말에 새로운 대입제도를 발표하고 1999년 고등학교 입학하는 학생부터 적용하기로 했다. 따라서 2002년 대입이 크게 달라졌다. 그 사이 정부는 특기 한 가지만 있으면 대학 간다고 홍보를 했고, 2002학년도 대학에 입학한 학생을 이해찬 1세대, 2003학번은 이해찬 2세대라고 했다. 이 때 고등학교에서 강제로 시행되던 야간자율학습과 월말고사, 모의고사 등을 전면 폐지했다.
1998년 2월, 국민의 정부라고 부르는 김대중 정부가 들어서고 대입제도를 개선한다고 발표했다. 이름하여 <새로운 대학입학제도와 교육비전2002>이다. 적용은 2002학년도 대입부터였다. 이 방안은 “입시 준비에 치중한 교육과정 운영에서 자율과 창의성을 기르는 교육과정 운영으로, 학교·교사 중심의 교육과정인 공급자 중심의 교육과정 체제에서 학생의 의사가 존중되는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정 체제로, 다과목의 지식 암기 위주의 학습에서 소과목의 자기주도적 탐구학습으로 개선”을 내용으로 했다. 이 방안에 따라 교육을 개선한다는 뜻에서 2002학년도 수능에는 수능에 영역별 등급제를 도입했다. 등급제는 점수로 줄 세우는 관행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고 보았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수능성적으로 특차 모집하던 전형 방식에서 수시는 학교생활기록부로 전형하는 방식으로 변경
- 대학수학능력시험은 원점수, 백분위점수, 표준점수, 변환표준점수, 변환표준점수에 의한 백분위점수와 원점수 및 변환표준점수 총점, 백분위점수 제공에서 영역별 등급과 종합등급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변경
- 학교 생활기록부에서 전체 교과 또는 일부 교과를 반영하고 자격증 수상 자료가 중시됨
- 학생부 교과는 절대평가(평어)와 상대평가(석차)를 모두 기록
1998년 발표 당시 방안에서 수능은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자격고사화 또는 입시 당락에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 총점과 소수점 표기 폐지. 영역별 점수와 등급제(9등급) 표기. 5개 영역으로 확대”한다고 했다. 실제 2002 대입에서는 수능 점수 중심의 특차가 폐지되었다. 수능의 각 영역 점수도 정수로 제공하였다. 반올림하여 정수로 제공한 결과, 성적 역전 현상이 있었다. 성적 역전에 따라 당락이 갈리는 데 대해 논란이 있었다.
2002학년도 수능부터 계열별 전국석차를 발표하지 않았다. 수능에 의한 한 줄 세우기에서 벗어나기 위한 방안이라고 했었다. 이에 대하여 교육 당국은 “기존의 진학지도는 주로 수능성적 총점에 의한 배치기준표에 학생의 성적을 대비시켜 맞추어 나간 것에 불과하였으나, 앞으로의 진학지도는 우선 학생의 소질과 적성을 고려하고 학생이 지원하고자 하는 전공분야 등으로 진학을 유도하는 진로지도로 자리매김 되어야 할 것”이라는 해설 자료를 2000년에 내었다. 또한 “향후 수능 총점 자체를 주요 전형 기준으로 사용하는 대학이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대입은 수능 이외에도 다양한 경로로 학생을 선발하는 방안이 추진되었다. 김영철(2007)의 연구에서는 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어학, 수학, 과학, 컴퓨터, 연기 등을 평가하는 특별전형 모집비율이 1997년 9.7%에서 2001년까지 23.4%로 늘었다. 2002학년도 이후에는 추천입학 정원도 늘었다. 2006년에는 특별전형이 37.4%까지 확대됐다. 대학 신입생 세 명 가운데 한 명은 시험점수가 아니라 또 다른 재능과 능력으로 입학한 것이다. 이 가운데 소년소녀가장, 광주민주화운동 희생자 자녀, 환경미화원 자녀, 전업주부 등 사회형평성을 고려한 특별전형으로 입학하는 이들도 생겼다.”
그러나 일반고에 재학하고 있는 대다수 학생은 특별전형은 해당되는 경우가 없고 자신들은 수능 점수로 대학 간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학에서는 신입생의 학력 저하를 들고 나왔다. 김영철(2007)의 연구에서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국민의 정부가 만든 입시제도로 대학을 간 ‘이해찬 세대’(2002학년도 신입생)가 ‘건국 이래 최저 학력’, ‘단군 이래 최저 학력’을 보였다는 것이다. 수능에서 재수생들이 고3보다 높은 점수를 받은 것은 ‘교육정책 실패’ 탓이라는 지적도 나왔다. 2002년 12월 18일자 동아일보 기사다.
교육부는 이른바 ‘이해찬 1세대’인 올해 대학 1학년생들이 중3이던 98년 10월 수능, 학생부, 입상실적, 추천서 등 다양한 전형자료를 활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2002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을 발표하면서 사실상 ‘무시험 전형’으로 대학에 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후 일선 고교에서는 ‘한 가지만 잘하면 대학에 갈 수 있다’며 공부를 게을리하는 현상이 벌어졌고 3년 뒤 치른 2002학년도 수능에서 평균 성적이 전년도보다 66.8점이나 떨어져 ‘이해찬 1세대’의 학력저하 논란이 일기도 했다.”
2001학년도와 2002학년도 대입 전형 방식은 다음과 같이 달랐다.
2002학년도 수시와 정시의 전형 요소를 보면 당시 대입제도의 특징이 보인다.
2001 대입과 2002 대입의 대학‧교육대학교의 모집 인원은 다음과 같다.
2001년에 비하여 2002년에 수시 모집 인원이 많이 줄었다. 수능 점수 중심의 특차가 폐지되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참고문헌>
교육부(2015). 2015개정교육과정 총론 해설 부록
교육부(2000). 2002학년도 대입제도 관련 문답집. 고등교육지원국(대학학사제도과)
김영철(2007). 대한민국 교육정책사 연구. 교육부
나무위키. 이해찬 세대. 2023.09.06. 접속
매일신문. 2002학년도 대입제도 개선안. 보도 1998.09.19.
https://news.imaeil.com/page/view/1998091914525474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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