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는 21세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있어서인지, 교육과정과 대학입시가 정신없이 달라지는 때였다. 교육과정에서는 21세기의 특징인 정보화 사회에 적응하는 사람을 기르기 위한 교육 정책은 산업 역군을 길러내는 교육 방식과는 달라야 한다고 생각했다. 입시도 성적만으로 선발하는 것은 과거의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1985년의 교육개혁심의회에서부터 제기되기 시작했고, 1995년 5·31 교육개혁에서 더욱 구체화되었다. 더구나 교육과정과 대학입시는 몇 년 전에 예고를 거쳐 시행에 들어가므로, 바꾸기로 예고된 정책이 적용되기도 전에 다음 바꿀 정책이 제시되기도 했다. 학교는 그만큼 정신이 없었다.
◆ 제5차 교육과정
첫 수능 시행을 준비하는 동안 교육과정은 제5차 교육과정으로 개정·고시되었다. 제5차 교육과정은 고등학교의 경우 1988년 3월에 고시됐다. 수능을 중심으로 대입을 바꾸려고 준비한 것과 5차 교육과정을 고시한 것은 연관성이 있지 않았다. 제5차 교육과정 개정 연구는 전두환 정권에서 이루어졌으며 고시는 노태우 정권이 집권하면서 이루어졌다.
교육과정을 개정한 이유는 지난 개정으로부터 5~7년이 지나서 개정할 시기가 되었다는 점이었다. 교육과정은 5년 단위로 개정되어 왔던 전례대로 개정을 준비한 것이다. 그런데 개정 연구 과정에서는 1985~86년에 활동했던 교육개혁심의회 보고서가 영향을 주었을 것이다. 즉, 제5차 개정은 제4차 교육과정에서 드러난 모순을 수정하는 선에서 개정하기로 하였으나, 실제로는 ‘21세기를 주도할 주체적이고 창조적이며 도덕적인 한국인을 기르고 복지국가 건설과 통일에 대비하는 미래 지향적인 교육’을 위해 개정한다고 했다.
기본 방향은
1) ‘기초교육의 강화’에서는 언어 능력, 수리 능력, 사고력, 기초 체력, 도덕성을 강조하였고
2) ‘정보화 사회에 대응하는 교육의 강화’에서는 정보 산업 과목을 신설하고 모든 교과목에서 주체성과 창조력, 사고력 등을 강조하였으며,
3) ‘교육과정 효율성 제고’에서는 교육과정이 의도한 것이 실제 교육 현장에서 그대로 실현될 수 있는 쓸모 있는 교육과정을 만드는 것이었다.
제5차 교육과정은 고등학교에는 1990년부터 적용되었다. 1988년에 고시하고 1989년에는 교과서를 집필하고 1990년에 검·인정 단계를 거쳐 학교가 교과서를 선택하면 1991년부터 학교에 적용되어야 하는데, 이 단계가 1년 축소된 채 적용되었다. 수능은 1990년에 고등학교 입학한 학생의 대입인 1993학년도 대입부터 수능을 시행하도록 추진되었으나, 수능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수능 시행이 1년 연기되어 1994 대입부터 적용되어서 제5차 교육과정 1년 차 학생들인 93학번은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가 되었다.
◆1995-1996학년도 수능: 계열별로 문제를 구분하여 시행함
1994학년도의 2회 시험에서 두 시험의 난이도 차이 때문에 두 시험 중 하나의 점수를 사용하는 것이 불합리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1995학년도 수능 시험은 1회만 실시하기로 결정되었다. 또한, 자연계에 해당하는 내용을 출제하지 않아 학력 저하가 문제시되자 시험을 계열별로 실시하게 되었다. 시험을 1회만 실시하는 등의 변경 사항에 대한 논의는 1994년 2월 16일에 정부와 민자당이 김숙희 교육부장관 등이 참석한 당정회의에서 논의하기 시작했다. (중앙일보 1994.02.16. 2023.08.13.검색. https://www.joongang.co.kr/article/2854910 )
결국 1995년에는 수능 시험의 횟수를 1회로 줄이고, 범교과적으로 출제되었던 문제를 계열별(인문/사회/예체능)로 나누어 출제하고, 성적은 4교시로 나눠 표시해 대학에서 각 영역별(언어, 수리탐구Ⅰ, 수리탐구Ⅱ, 외국어)로 가중치를 적용할 수 있도록 했다.
언어영역과 외국어 영역(영어)은 문・이과 구분이 없이 공통으로 출제했고, 수리탐구Ⅰ 영역(수학)과 수리탐구Ⅱ 영역(사회·과학탐구)에서는 전체의 25% 정도가 계열별로 구분되어 출제되었다. 대입은 1994학년도와 마찬가지로 일부 대학에서 대학별고사가 치러져, 수능과 학교성적 및 본고사로 구성되었다. 이렇게 1995학년도 수능은 학생들이 고3이 되어서야 방식이 달라지기로 결정이 되었다. 현재 시행되고 있는 대입 4년 예고제와 비교하면 혁명적 조치라고 할 수 있다.
1996학년도 수능은 1995학년도와 대부분 비슷했다. 외국어(영어) 듣기 문항은 10문항으로 확대되었다. 1995학년도 수능과 1996학년도 수능은 200문항, 360분, 200점에 모두 객관식 5지선다로 출제되었으며, 성적은 전체·영역별 원점수와 계열별 백분위 점수를 제공했다.
▲1995-1996학년도 수능 영역 및 점수 체제
◆ 교육개혁위원회의 긴급 건의
1992년 12월 8일 당선되어 1993년부터 시작된 김영삼 문민정부는 1994년 2월에 교육개혁위원회를 구성했다. 교육개혁위원회의 교육개혁안은 1995년 5월 31일에 <신교육체제 수립을 위한 교육개혁방안>이라는 대통령 보고서 형식으로 발표되었다. 이 개혁안을 5·31 교육개혁이라고 불렸다 (관련 내용은 다음호 글에 담을 예정임). 1994년에도 교육개혁위원회의 활동이 있었다. 그 중 대학입시 관련 사항은 ‘본고사 폐지’ 건의가 두드러진다. 교육개혁위원회는 1994년 6월 13일에 ‘<학교 교육 정상회를 위한 대학입학제도 긴급대책안> 대통령께 건의 방침’을 발표했다. 서울대를 비롯한 39개 대학이 국, 영, 수 중심의 대학별 고사를 실시함에 따라 고등학교가 국, 영, 수 편중의 교육 운영으로 교육에 파행을 가져오고 70년대의 과열과외 방국론 현상이 재발되니 새로운 대입제도를 마련하기까지 우선 다음 조치를 하자는 내용이었다.
1) 대학입시에서 대학별고사를 폐지한다.
2) 대학수학능력시험의 변별력을 제고한다.
3) 현행 내신제도의 골격을 유지하되 각 대학에서는 고교생활기록부 사본을 전형 자료로 최대한 활용하도록 한다.
4) 대학은 다양한 전형자료를 선택적으로 활용하되, 일관된 기준을 적용하여 신입생을 선발할 수 있게 한다.
5) 지원자들의 복수 지원이 실질적으로 보장되도록 대학 지원 기회를 확대한다.
이상의 방안이 95학년도 기본계획을 변경하는 무리가 따르더라도 시행하기를 바라며, 95학년도부터 시행할 수 없을 때는 96학년도부터 시행하도록 건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에 대하여 교육부는 95학년도부터 적용하는 것은 심각한 혼란이 따르므로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또한 ‘정책의 변경에 있어서는 정책의 일관성과 예측 가능성 그리고 수험생의 신뢰 이익이 최대한 고려되어야 한다.’고 했다. ⓵
◆ 교육개혁심의회 건의안대로 1997학년도 대입제도가 바뀌어 갔다.
대학별 본고사는 1996학년도부터 폐지의 수순을 밟았다. 1996학년도에는 연세대가 본고사를 폐지했고, 1997학년도에는 서울대와 고려대도 본고사를 폐지하여 1997학년도에는 본고사가 완전히 폐지되었다.
수능 변별력을 제고하자는 건의는 수능시험의 변별력을 제고하는 것이 교육을 정상화시킬 수 있는 방안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이다. 당시 수능은 창의력, 사고력과 문제해결력을 기르는 학습의 결과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로 평가되었기 때문이다. 변별력 제고를 위하여 1997학년도 수능부터 400점 만점으로 개편되었다. 시험도 어려웠다. 1996학년도 대입 수능은 1997학년도 대입 수능과 더불어 역대 최악의 불수능으로 손꼽힌다. 당시 보도에 의하면 당시 전국 수석이 200점 만점에 188.7점이었다. 1997학년도에도 400점 만점에 인문계 수석은 370.2점, 자연계 수석은 373.3점이었다.
복수 지원 보장과 관련해서는 1996학년도 대입에서는 ‘전기대학 입시는 입시 일자가 다른 대학간 최다 세차례의 응시기회가 수험생에게 주어졌고. 입시 일자가 단 하루뿐인 특차모집 및 후기, 추가모집과 입시 일자가 같은 대학 및 전문대학. 개방대학 간 복수지원은 금지되었었다.
1997학년도 대입제도는 1995년 12월 19일에 발표했다. 재학생이 2학년 말일 때 발표한 것이다. 1997학년도에는 국가조정 선발일정(특차·정시모집)과 대학자율 선발일정(수시·추가모집)으로 구분하여 시행하여 전·후기 구분이 없어졌다. 수시모집제를 새로 도입하고 특별전형은 외교관 등 자녀 및 농어촌학생 등에 한정됐던 특별전형 대상을 북한귀순동포를 포함한 모든 재외국민과 외국인, 소년·소년가장, 생계곤란한 독립유공자손 자녀 등으로 확대하였다. 정시는 대학과 교육대학을 날짜를 달리하는 「가」, 「나」, 「다」, 「라」 군으로 나눠 지원할 수 있도록 시행했다.
◆ 1997학년도 수능 : 수리탐구에 주관식 문항을 출제하기 시작함
수능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수리.탐구영역Ⅰ(수학)의 경우 주관식 문항이 전체 30문항 중 20%인 6개가량 출제되고, 외국어(영어) 영역의 경우 듣기평가가 10문항에서 17문항(전체 55문항의 30%)으로 확대되었다.
▲1997-1998학년도 수능 영역 및 점수 체제
1997년부터는 230 문항이 되었다. 언어 5, 수리·탐구Ⅱ 20, 외국어 5 문항을 늘렸다. 외국어 영역(영어) 듣기 문항도 10문항에서 17문항으로 확대되었다. 시간도 390분(언어, 수리·탐구Ⅰ, 수리·탐구Ⅱ 각 10분씩 연장)이 되었다. 총점은 400점 만점으로 바뀌었다. 수리·탐구Ⅰ 영역에 주관식 20%가 출제되었다. 성적은 전체·영역별 원점수와 계열별·영역별 백분위 점수를 제공하였다. 대체로 수능은 변별력을 높이는 방향으로 변했다.
1998학년도에는 3교시 수리탐구 시험시간이 110분에서 120분으로 늘었다. 이로써 시험시간은 총 400분이 되었다.
<참고문헌>
교육부(2015). 2015개정교육과정 총론 해설 부록
◆◆◆◆◆ 각주 ◆◆◆◆◆
⓵교육개혁위원회 발족. 행정안전부 대통령기록관 홈페이지. http://152.99.238.80/portal/online_contents/instant_record/instantRecordDetail.do?seq=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