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자 울리는, 기막히는 판결!

김창현 승인 2023.05.24 03:23 | 최종 수정 2023.05.24 21:17 의견 43

경제범죄는 강력범죄 못지않게 피해가 크고, 특히 사기죄는 한 개인이 아닌 피해자의 온 가족들이 지옥에서 사는 고초를 수년, 수십년을 겪게 한다는 점에서 살인보다도 더 극악한 영혼살인이라 할 수 있다. 요즘엔 전통적인 범죄의 범위에 들지 않는 소위 신종 사기 범죄가 늘면서 처벌의 사각지대가 생겨나고, 이런 빈틈을 노린 범죄자들이 교묘하게 법망을 빠져나가 같은 범죄를 반복해 저지르는 경우도 많다. 이런 가운데 상식 밖의 판결이 있어 소개해 보고자 한다.

사건개요

판결문에 의하면 철강재를 수입하여 유통판매하는 피고인 형제가 공동으로 경영하는 A사(피고인 동생은 B사의 대표 겸직)는 2017년 영업흑자였으나 2018년 회계기준으로 적자가 110억원 이상이었다. 완전자본잠식과 채무초과로 외감에서 '의견거절'까지 받아 그 내용이 2019년 4월에 공시가 됐다. 그러나 피고인 A사 대표는 회사의 파탄난 재정상황을 피해자에게 감추고 2019년 3차례 피해자 회사 담보와 명의로 신용장을 개설하게 했다. 또한 해외에서 철강재를 수입하고 수입대금과 수수료는 150일 후에 A사가 피해자회사에 결제하기로 하는 수입대행계약을 체결했다. 하지만 A사는 그사이 법인회생절차를 진행하고 결재 기일을 연장하면서 피해자 회사가 수입한 철강에 대한 물품대금과 대여금 약28억 원을 떠안게 했다는게 골자다.

몇가지 석연치 않은 점을 짚어보도록 하자.

먼저 외감회사의 '의견거절'건이다. 외감대상인 회사의 대표는 2018년 본인 회사의 파탄난 재정상태에 대해 2018년 11월 이미 외감기관으로부터 감사와 실사를 받았다. 그런데 이듬해인 2019년 4월 17일에 외감기관이 외부공시한 내용을 보고서야 회사의 열악한 재정상황과 의견거절사실에 대해 알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맞는 말일까? 또한 이를 받아들인 재판부는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인가?

두번째로 수입대행 계약이다. 판결문에는 피해자 회사의 신용장 한도가 부족하여 A사에서 신용장 개설 가능한 은행까지 피해자에게 소개했다. 피고인은 피해자 회사가 담보부족으로 신용장 개설이 안되면 A사가 직접 수입하려 했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발생하는 합리적인 의심은 직접 수입 가능한 상황이라면 '왜 소개까지 해가며 수입대행업체에 수수료를 지불해야하는 수입대행계약을 체결했는가?'이다. 애초에 직접 수입한다면 수입대행업체에 줘야하는 수수료도 발행하지 않을텐데 말이다.

따라서 스스로 수입할 자력이 없는 업체들이 수입대행을 의뢰할 수 밖에 없다. 피고인이 A사를 2019년 11월 29일에 회생신청하여 2020년 3월에 파산했는데 서울회생법원 기록에 의하면, 피고인은 2017년, 2018년 당시 A사의 '무자력'을 스스로 주장하며 회생신청하고 파산했다. 그렇다면, A사의 무자력은 아무리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평가해보아도 이미 완전히 입증이 된 셈이다.

세번째는 바이백(Buy-Back)계약이라는 시스템이다. 2019년 A사가 피해자 회사를 통해 수입한 제품을, 대기업인 D사에 덤핑으로 넘기고, 이를 동생이 대표로 있는 B사가 1.2% 수수료를 붙여서 당일에 D사로부터 재구매 계약을 한것이다. 재정상태가 어려운 A사는 왜 덤핑으로 판매를 했을까? 재정상태가 안좋으면 최대한의 이익을 붙여 판매하는 것이 당연하고 적어도 손해는 보지 않고 판매해야 하는 것 아닌가?

더 황당한 사실은 해외에서 피해자가 수입계약한 철강제품이 수출항에서 선적중일때, 즉, 제품을 실은 배가 국내 도착은 커녕 출항조차 하지 않았을때 진행됐다는 것이다. 수입을 대행했던 피해자회사에서 수입통관이나 화주이관을 할 수도 없었던 때 이미 A사는 수입자인 피해자회사를 건너뛰고 수출항에 있는 철강제품을 D사에 덤핑판매하고 판매대금을 챙겼다. 이 사실을 모르는 피해자에게는 결제기일 연장을 요청하고, D사에서 받은 판매대금을 타 대기업에 A사의 물품대 빚을 갚는 용도로 사용했다. 또한 동생회사인 B사로 송금하여, B사가 다시 D사에서 1.2% 수수료를 붙여 제품을 재구매하는 용도로 사용됐다. A사는 1998년 경 회사 창립이래 단한번도 수입모선에 선적된 전체 철강재를 한꺼번에 덤핑 판매한 사실이 없고, Buy-Back 계약으로 판매한 적도 없음을 A사 직원이 법정에 나와서 증언한 바도 있다.

▲A사 2019년 수입신고필증 수입원가와 서울회생법원 조사보고서 판매가격 비교


위의 표를 확인하면 A사는 타 수입대행업체들(대기업)을 통해서도 수입철강을 구매했는데 2019년 A사가 D사에 덤핑판매한 철강제품은 피해자회사와 A사가 직접 수입한 철강재뿐이다. 덤핑 판매율을 확인하면 유독 피해자 회사가 수입한 제품만 덤핑률이 상당히 높음을 알 수 있다. '의견거절'을 받은 무자력의 회사가 수입대행업체에서 물건을 받아 적자(-15% ~ -19%)로 판매하면, 그 수입대행업체에 물품대를 결제할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여러 대기업들도 A사의 수입대행을 해줬으나, 물품대를 받지 못하는 피해를 당한 것은 1인 법인인 피해자회사 뿐이다. A사가 타 수입대행업체들이 수입한 제품은 단 1톤도 덤핑판매하지 않았으니 당연한 결과로 보인다.

네번째는 법인회생신청이다. 판결문에 의하면 피고인은 2019년 9월 16일에 도산전문 법무법인에 A사 회생신청을 위한 착수금을 입금했다. 그런데 피고인은 법정에서 A사의 회생신청을 결심한 날이 2019년 11월 11일 이라고 판사에게 말한 기록이 있다. 비용부터 지불하고 두달이 지나서 살지? 말지? 고민하고 결정하는 경우가 있을까? 또한,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1차 수입분에 대한 대금 결제일을 2019년 9월 26일에서 11월 26일로 연장요청했다. 3차 수입분에 대해 D사에 덤핑판매하고 판매대금을 챙긴 날이 2019년 9월 30일이다. 피고인이 A사의 법인회생 신청을 위해 도산전문 법무법인에 착수금을 입금한 날이 2019년 9월 16일이라면, 적어도 피고인은 피해자에게 1차 수입분 결제일을 연장하지 말았어야 한다. 또한 피해자가 수출상에 결제한 3차 수입분을 D사에 덤핑판매하고 2019년 9월 30일 받은 판매대금 약 12억 원은 적어도 피해자에게 물품대로 지급했어야 상식적으로 맞을 것이다.

위와 같은 합리적인 의심과 일반상식에 부합하는 여러 사실증거에도 불구하고 서울중앙지법 형사30부는 피고인들의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위반 사기죄 (2019고합1099, 2020고합539, 공소액 약28억 원) 에 대해 2022년 11월 3일 무죄를 선고했다. 현재 검찰은 1심 재판에서 드러나지 않았으나 별건으로 기소된 피고인들의 피해자에 대한 사문서위조 및 행사죄와 1심 재판부의 사실 오인을 이유로 항소하여 서울고등법원 제 2형사부에서 항소심을 진행하고 있다.

옛날에 소를 훔친 도둑에게 사또가 추궁하자, '소를 훔친것이 아니라 고삐를 잡고 가는데 소가따라왔다'고 말하니 무죄가 되었다고 한다. 비슷한 예로 흉기로 살인한 살인범이 주범은 흉기를 만든사람이라고 우기면 감형이 되는 현실....

항소심에서 현명한 재판부의 새로운 판결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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