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입학사정관의 공부법 (58) - 당장 정시가 확대될까?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코로나 시대의 공부법"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저자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2.01.10 12:44 의견 0

이제 교육은 산업사회에서의 직장인을 양성하는 역할에서 불확실한 미래 상황에 대한 성찰적인 문제해결력을 갖춘 사람을 양성하는 역할로 방향을 바꾸었다. 이에 따라 우수한 학력은 경쟁자와의 비교에서 나타나는 수월성이 아니고 학습자 개개인성에서 나타나는 탁월성과 개성이라는 관점이 대두되었다. 또한 개인 중심, 지식 습득 중심 학습관은 과거의 것이고 협력 중심, 지식 생산 중심 학습관은 현재의 것이다.


2015개정 교육과정 적용 이후 교실은 역량을 기르는 방식으로 학습이 달라져가고 있다. 학습관과 학습 방식이 달라진 상황에 따라 평가도 달라져야 한다. 현재 교실에 가장 어울리는 평가는 교사가 학생을 교실 상황에서 평가하는 방식이어야 한다.

그런데 교실 밖에서는 전형 요소 중 개인의 탁월성, 지식의 생산 역량, 협력적 문제해결력을 측정하기에 가장 적합하지 않은 수능을 확대하겠다고 하고 있다. 지난 연말 정시모집은 60% 이상으로 선발하도록 규정하는 고등교육법 개정안을 국민의 힘 조경태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바 있다. 주요 대선 후보들도 정시를 확대하겠다고 한다. 교육적 가치와 어긋나는 수능 정시 확대가 어쩌면 2028 대입 이전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불안감은 기우일까?

2019년 11월, 교육부는 정시 40% 확대 조치에서 ‘2022학년도 대입부터 조기 달성하도록 유도한다’고 규정했다. 이는 2019년 4월에 이미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에게 적용되는 ‘대입전형 시행계획’이 이미 각 대학에서 발표되었으므로 2021 입시까지는 정시 확대를 적용할 수 없고, 2019학년도 고1 학생들이 진학하는 2022 대입부터 적용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정시 확대에 해당하는 대학은 ‘학종과 논술위주전형에 쏠림이 있는 16개 대학’이었다. 이들 대학은 서울시내 주요 대학이라고 불리는 대학들이다.

만약 현재 대선이 지나고 정시를 확대한다고 하면 이와 같은 일정 때문에 새해 고등학생이 대학에 가는 2025대입부터 적용할 수 있다. 한편 2025대입의 수능은 현재와 같은 형태로 시행되게 된다. 이렇게 보면 현재와 같은 방식의 수능으로 선발하는 제도에서 비중만 늘리면 이번 정시 모집에서 보인 부정적인 상황이 확대될 것이다. 수능 응시생 중 N수생의 비율이 늘고 수능 고득점자 중 N수생의 비중이 늘어 합격자 중 N수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현상이 그것이다. 이는 실패한 학생과 늦게 공부를 시작한 학생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선을 넘어 누구나 다시 도전하고 싶도록 유혹하는 선을 제시한 모양새이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봐도 학교 공부에 성실히 참여해서 역량을 기르는 공부를 해서 당해 연도에 수시로 대학에 입학하면 그것보다 좋은 일이 없다. 학생이 이미 내신이 나쁘다고 수능으로 도전하겠다면서 학교생활을 제대로 하지 않다가 결국 수능에서도 원하는 성적을 받지 못하게 되고 다시 내년에 수능에 도전하겠다고 하면 다시 수험생활을 하는 학생도 이를 뒷바라지하는 학부모도 보통 힘든 일이 아니다.

정시가 늘면 재학생이 정시에 성공하게 될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라고 하는 가정은 정시가 늘수록 N수생 비중이 늘고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지 않다. 정시가 늘면 수시가 줄고 재학생 선발 중심의 수시가 줄어 전체적으로 보면 재학생이 대학 가는 길이 좁아지게 된다. 결국 정시 수능 전형 확대는 수능을 치르기 전까지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있다가 수능에서 절망하는 많은 학생들을 희망 고문하는 방식이다. 이렇게 보면 정시 확대를 공약으로 내세우는 것은 맞는 방향이 아니다.

2025대입부터 2027대입에 해당하는 3년이 선거를 기회로 수능 정시가 확대되어서는 안 된다. 오히려 수능 정시는 규율할 일이 아니고 대학 자율에 맡길 일이다. 대학은 수능이 모든 면에서 적절한 평가가 아님을 알고 있다. 또한 2024년 2월에 발표할 2028 대입에서는 수능이 존재해야 한다 하더라도 수능의 평가 방식을 바꾸고 수능의 영향력도 더 약화시켜야 한다. 수능은 불확실한 미래를 헤쳐 나갈 역량을 갖추도록 유도하고 이를 평가해야 할 미래형 평가가 아니다. 수능은 주로 미래의 문제 해결에 도움이 별로 안 되는 과거에 생산된 지식을 익힌 결과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시험이다. 정시 수능 확대로 교실이 수능 대비 방향으로 선회한다면 학생들은 불확실한 미래에 어떤 대응을 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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