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입학사정관의 공부법 (81) - 대학은 왜 탐구활동을 중시할까? (1)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코로나 시대의 공부법"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저자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2.06.20 09:31 | 최종 수정 2022.06.20 16:24 의견 0

학종에서 탐구활동 경험은 학생의 학습 상황을 평가할 때 가장 중시하는 사항입니다. 서울대학교의 평가 기준을 보면 첫째가 ‘학업능력’인데, ‘폭넓은 지식을 깊이 있게 갖추고 활용할 수 있는 학생인가?’를 보겠다고 합니다. ‘폭넓은 지식을 깊이 있게 갖추고’는 ‘오류가 없는 조건화된 지식’을 갖추라는 말이고, ‘활용’은 평가 기준에서 말하는 ‘습득한 지식을 적절히 활용한 경험이 있는가?’에 해당하는 말입니다. 즉, 지식과 그 활용 경험을 보겠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지식을 활용한 경험하는 학습 결과가 탐구활동으로 나타납니다.


이 탐구활동은 사회문제탐구, 과학과제탐구 같은 탐구 관련 과목을 수강해야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모든 과목에서 학습활동으로 제시된 활동을 통하여 탐구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자율활동이나 진로활동, 교육과정 유연화 시간 등에서도 탐구활동을 할 수 있습니다. 스스로 궁금한 주제를 정해서 탐구활동을 하고 이런 시간에 발표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학교 교육과정 전체에서 탐구가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21세기에 가까이 올 무렵 뇌과학과 학습관련 심리학 분야의 연구 성과를 바탕으로 미국의 학습과학발전위원회와 학습연구·교육실천연구위원회가 펴낸 학습과학(How People Learn)에서 제시하고 있는 학습 및 교수 관련 조언들은 우리나라 교육과정에도 영향을 미쳤는데, 여기에서도 탐구활동이 왜 중시되는지를 알 수 있는 단서들이 있습니다.

학생이 학습을 잘 하기 위해서는 선행지식이 분명해야 합니다. 《물고기는 물고기야》라는 동화책이 있는데, 물고기 친구 올챙이가 개구리가 되어 물 밖에 나가 세상 구경을 한 뒤 물 속 물고기 친구한테 동물과 새 이야기를 해 주었더니 물고기는 물고기 몸에 다리가 달린 동물, 물고기 몸에 날개가 달린 동물을 상상했다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이처럼 학습자의 선행지식이 다음 단계 학습에 잘못된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학습자의 과목에 대한 불완전한 이해, 잘못된 신념, 오개념 등이 있다면 바로잡아야 합니다.

‘다트 던지기 실험’이야기도 있습니다. 물 속에 다트판을 두고 빛의 굴절을 아는 집단과 모르는 집단이 다트 던지기를 한 뒤, 다트판을 더 깊은 곳으로 이동시켜 다시 다트 던지기를 하면 빛의 굴절을 이해한 집단이 더 명중률이 높았다고 합니다. 문제 해결에 선행지식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준 실험이었습니다.

암기보다는 이해하는 학습을 해야 합니다. 새로운 학습과학도 사실을 아는 것이 사고와 문제해결에서 중요함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용 가능한 지식’은 분리된 사실을 단순히 나열하는 것과는 다르다고 합니다. 단순한 ‘사실에 대한 기억’은 활성화되지 않은 죽은 지식입니다. 이 지식은 다른 상황에는 피상적으로 적용되어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못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또 이 지식은 다른 상황에 적용되지 않으므로 기억에서 사라집니다. 그래서 암기한 지식을 휘발성 지식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정맥과 동맥의 특성을 단순히 외운 사람은 외운 사실만 기억하고 있지만, 정맥과 동맥에 대한 사용 가능한 지식을 많이 소유한 사람은 심장에서 혈액이 높은 압력으로 분출되기 때문에 동맥이 더 탄력적이어야 한다는 사실, 역류를 막기 위해 맥박이 밸브 역할을 한다는 사실을 외우지 않아도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를 통해 중요한 개념·생각을 중심으로 조직화된 지식은 활용할 수 있는 지식입니다. 이를 조건화된 지식이라고 합니다. 다른 상황에 적용해서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는 지식인 겁니다. 이 지식을 머리에서 꺼내는데 노력이 많이 들 수 있기도 하고, 노력이 덜 필요하기도 하며, 자동적으로 꺼낼 수도 있습니다. 유능한 사람의 지식은 노력을 덜 하고도 지식을 꺼내 사용할 수 있고 다른 지식을 적용하는 것이 더 나은지를 성찰할 수도 있습니다.

‘두 의사가 같은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는데 한 의사는 명의라고 불리는데 한 의사는 그렇지 못했다. 왜 그럴까?’라는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지식의 양은 같지만 이해를 통해 조건화된 지식을 가지고 있어, 그 지식을 상황에 잘 적용할 수 있는 의사가 명의겠죠. 유능한 전문가 또는 명인은 문제를 창의적으로 해결하는 사람입니다. 레시피대로 요리하는 숙련된 전문가 요리사와 창의적으로 요리하는 유능한 전문가 요리사 중 상황에 맞는 해결책을 제시하는 사람은 창의적 요리사입니다. 유능한 전문가나 명인은 모르는 것을 탐색하는 메타인지가 발달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들을 숙련된 초보자라고 하는데, 많은 분야에 숙련되어 있고 자부심도 있지만, 자신이 앞으로 알 수 있는 것에 비하면 보잘 것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이라고 합니다. 이 상황이 계속 전문성을 높이는 계기가 된다고 합니다.

공부에서 탐구활동을 중시하는 까닭이 여기 있습니다. 특정한 맥락에서 학습하고 그것으로 마치면 다른 맥락에 적용할 수 없고 지식을 활용할 수 없습니다. 연관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 배운 지식을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연습을 평소에 해봐야 이해를 바탕으로 조직화된 지식을 활성화시킬 수 있습니다. 지식을 유창하게 인출할 수 있으며, 자신이 모르는 영역을 깨닫고 더 학습하게 됩니다. 나아가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되며 계속 전문성을 높이는 계기가 되어 대학에 와서도 공부의 즐거움, 학문의 즐거움을 유지하게 되리라고 대학은 기대하므로 대학이 학생을 선발할 때 탐구활동의 경험과 그 질을 알고 싶어 합니다.


<참고자료>
학습과학발전위원회, 학습연구·교육실천연구위원회 공편, 신종호 등 옮김(2007). 학습과학. 학지사
서울대학교(2022). 2023학년도 서울대학교 학생부종합전형 안내

저작권자 ⓒ 동작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