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서울대입학사정관의 공부법 (80) - 학교가 문제라는 시선

한국진로진학정보원 진동섭
전 서울대 입학사정관
"입시설계 초등부터 시작하라", "코로나 시대의 공부법" ,"공부머리는 문해력이다" 저자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2.06.13 10:06 | 최종 수정 2022.06.20 01:00 의견 0

국가수준에서 고시한 교육과정을 기본으로 각 시·도교육청이 시·도에 맞게 교육과정 내용을 보완하여 지침을 만들면 각 학교는 이를 바탕으로 학교교육과정을 편성·운영합니다. 국가 수준의 교육과정에서는 ‘추구하는 인간상’이라는 항목으로 교육을 통해 성장하기를 바라는 모습이 들어 있습니다. 교육은 사람을 기르는 행위인데 이 행위의 최종 모습을 그린 것이 인간상인 거죠.

현재 학생들은 2015개정 교육과정 안에서 배우고 있습니다. 교육과정은 제7차 개정 이후에는 개정 고시한 연도로 부릅니다. 제7차 교육과정 다음은 2007개정 교육과정이고, 바로 2009개정 교육과정이 이어졌으며, 현재 2015개정 교육과정이 적용되고 있고, 2025년에 상급학교 진급하는 학생들부터는 2022개정 교육과정을 적용받게 됩니다.

2022년에 고시, 2023년에는 교과서 집필, 2024년에는 검인정 심사를 하고 학교에서 사용할 교과서를 고릅니다. 그 다음 순서가 2025년부터 적용하는 것입니다. 현재 2015개정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추구하는 인간상은 그 이전과 앞으로 바뀔 2022개정 교육과정 내내 큰 차이는 없습니다. 추구하는 인간상은 제5차 교육과정에서 처음 제시했는데요. 우선 ‘인간상’이라는 어휘는 낯설죠. 각 대학에서도 ‘인재상’이라고 하지 ‘인간상’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왜 인간상일가요? 국가교육과정은 능력을 말하는 ‘인재상’보다는 사람 됨됨이를 중시하는 ‘인간상’이라는 용어가 더 적절하다는 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반영되어 추구하는 인간상이라고 합니다.

이 안에는 홍익인간의 이념, 인격 도야, 자주적 생활 능력, 민주 시민, 인간다운 삶, 민주국가 발전, 인류 공영의 이상 등을 표방한 뒤,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교양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으로 교육한다고 내세웠습니다. 2022개정 교육과정 시안에서도 추구하는 인간상은 자주적인 사람을 자기주도적인 사람으로 바꾸려고 한다는 것 이외에는 큰 변화가 없습니다. 과거의 덕목도 비슷했습니다. 예를 들면 제6차 교육과정에서 제시한 인간상은 “이 교육과정을 통하여 추구하는 인간상은 건강한 사람, 자주적인 사람, 창의적인 사람, 도덕적인 사람으로 한다.”였습니다. 네 가지 안에 건강한 사람 대신 더불어 사는 사람이 자리를 차지한 한 것이 차이점입니다. 세계화 또는 글로벌이라는 가치가 제7차 이후 강조된 영향입니다.

자신의 진로와 삶을 개척하고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능력을 기르는 것은 피상적인 교육으로는 이룰 수 없습니다. 지식 정보에 대한 깊이 있는 교육이 필요합니다. 한편 교양 있는 사람, 더불어 사는 사람은 인격을 도야하는 학습을 통하여 길러집니다. 결국 인격체로 성장하면서 고도 기술 사회에 적합한 지식을 가진 사람으로 기르는 것이 학교 교육의 목표입니다. 이 목표와 연결되어 있는 상위 개념이 홍익인간의 이념입니다. 학교는 교과 학습과 창의적 체험활동을 통해 이 교육을 이루어 갑니다. 학교는 지식만을 가르칠 수도 없고 지식을 외면하고 인격 도야에만 진력할 수도 없습니다. 전인교육, 착하고 공부도 잘 하는 학생으로 기르는 교육을 하려고 합니다.

그런데 1994년 서태지와 아이들의 ‘교실 이데아’가 충격을 주었습니다. 그 때는 한 교실에 학생은 60명 가까이 함께 생활했고, 입시는 첫 해 수능을 보는 때라 학생들은 교실에 갇혀서 심지어 칸막이를 치고 책상에 얼굴을 묻은 채 한 문제라도 더 맞추려고 자율학습이라는 강제학습을 하다 ‘집에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잠깐 집에 가서 눈 붙이고 다시 학교로 나오던 시기였습니다. 이런 상황이 계속 이어지다보니 2007년 앨빈 토플러는 한 인터뷰에서 했던 말이 설득력이 있었습니다.

‘한국 학생들은 하루 10시간 이상을 학교와 학원에서 자신들이 살아갈 미래에 필요하지 않을 지식과 존재하지도 않을 직업을 위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더 나쁜 것은 국가발전의 가장 큰 장애요인인 평등화·획일화 교육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차기 한국의 대통령은 경제나 국가안보보다 오히려 교육개혁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런데 교육은 인터뷰가 이루어질 무렵부터 바뀔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011년에 고등학교 입학한, 대학으로 치면 2014학번부터 달라졌습니다. 교과학습에서 문제풀이를 덜 하고, 탐구활동도 해서 지식을 적용하는 경험도 해 보고, 동아리활동이나 진로활동에서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소통과 만남을 경험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도 수능 문제풀이를 하지 않을 수는 없었습니다. 수시에서는 수능 최저가 있고, 수시에 실패하거나 재수로 재도전을 하려면 수능은 필수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학교가 학원이냐?’라는 자조는 사라지고 수능 풀이 수업을 하는 학교는 스스로를 좀 창피하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입시는 교육에 큰 영향을 미칩니다. 우리 학생들은 대부분 대학에 진학하기를 원하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건국 이래, 아니 조선시대 서당에서도 입시 준비를 했습니다. 1980년대, 모 여고 김 선생님은 학생의 인격과 정서 함양을 위해 문제를 풀지 않고 체험하고 발표하는 수업을 했습니다. 그러다 전교학생대의원회의에서 항의를 받았었죠. ‘선생님의 마음은 이해하지만 대학은 누가 보내주나요?’ 입시가 학력고사라 생긴 문제죠. 학생을 이기적이라고 비난하기는 어렵습니다. 2010년 모 학교 교감은 학부모의 집단 항의 방문을 받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토론과 발표를 시키면 수능은 어떻게 보느냐? 문제를 풀어달라.’는 학부모의 주문이었습니다. 당시는 입학사정관 전형이 있기는 하지만 수능 비중이 워낙 높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생긴 일입니다. 그런데 이런 주문이 없어진 이유는 입시가 문제풀이로부터 조금 거리를 두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학교의 문제는 수능 전형 확대에 1차적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와 같은 방식의 일부 과목을 선택해서 선택형 문제를 푸는 수능은 2027대입까지는 유지됩니다. 지난 선거를 통해 나온 이야기는 ‘공정이 중요하다, 공정은 수능이다, 수능 정시를 더 확대한다.’였습니다.

수능이 공정한가에 대해서는 2018년에 대입제도 공론화를 전후해서 워낙 많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수능이 공정하지 않다고 주장하면 기득권층이라고 비난받을 지경입니다. 교사가 학생부 기록에 권력을 쥐려고 학종을 지지한다는 비난도 있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2019년 겨울의 초입에서 학종 비중이 높은 16개 대학은 '정시를 확대하라'고 강제하자, 교실은 수능 대비로 돌아섰습니다. 재수생도 증가하고 있고 더 늘어날 전망입니다. 이번 6월 모의평가에서 재수생 지원수는 전년도에 비해 약 1만 명이 늘었습니다. 그래서 현재 수능 반영비는 다시 2020때로 돌려야 합니다. 학생 선발 방식은 대학이 알아서 하라고 하면 알아서 합니다. 대학마다 사정이 있어 자기 대학에 맞는 방법을 모색할 겁니다. 대학 내 의견 수렴을 위한 협의체도 있습니다.

학교가 제 역할을 못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선생님이 생각이 없어서거나 학교가 교육 이념을 배반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학교가 이상해 보인다면 가장 괴로운 사람이 선생님이고, 그 해법은 선생님이 압니다. 우스개 소리로 우문현답이라는 말이 ‘우리의 문제는 현장에 있다.’라는 뜻이랍니다. 우선 입시라도 수능 중심에서 벗어나면 선생님이 교육을 바로 이끄는 자리에 설 겁니다. 교육정책은 대강 외치면 그럴 듯해 보이지만 해결 방안은 아주 세심한 부분에 달려 있습니다. 학교 현장을 경험하지 못한 인사의 주장은 피상적일 뿐입니다. 아무리 그 주장이 문제의식을 드러내는 시발점이 된다고 해도 그 문제의식은 현장의 것이 아닙니다.


우선 입시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참고>
1) 중앙일보. 최현규 특파원(2007). 평등·획일화,한국교육 미래와 정반대로 가
https://www.joongang.co.kr/article/2890423#home)

2) 2015개정교육과정의 ‘추구하는인간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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