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필 작가 에세이(60) - 천사의 기도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2.05.16 17:09 | 최종 수정 2022.05.16 18:18 의견 0

브라질 대서양 연안 파라나주 이과수에는 악마 한 녀석이 살고 있다고 한다. 그 녀석이 살고 있는 폭포 근처에는 굉음과 사나운 바람이 끊이질 않고 있고, 헹여라도 접근하는 이가 있다면 물보라를 일으켜 단숨에 온몸을 물로 적셔버린다 한다. 굉음은 밤이되면 20km 밖까지 들린다하니 그 오싹함은 이루 말할수가 없다. 도대체 어떤 녀석이길래 이토록 악명이 떨쳐져 있고 괴소문이 멀리까지 퍼져있는걸까? 그 녀석을 한번 봐야겠다. 어떤 녀석인지 내 눈으로 소문의 진상을 직접 확인해야겠다. 만반의 채비를 갖추고 이과수 국립공원으로 향한다.

이과수 국립공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사이에 두고 1350km 길이의 이과수 강이 흐르고 있다. 바로 이 강의 하류지점에 있는 공원으로서 파라나 강과의 합류점에서 상류 23km 지점에 위치해 있는 세계적 공원이다. 여기에 낙차지점에 있는 절벽으로 높이 60~82m 정도의 크고 작은 폭포가 275개가 형성되어 있는데 바로 이를 모두 통틀어 이과수 폭포라 한다. 눈 앞에서 보면 말 그대로 거대한 폭포 집성촌을 보는 듯 그 규모가 장관이다. 강 가장자리에는 빼곡한 원시림이 있어 다양한 열대 동식물을 자연 그대로 구경할 수 있다. 공원의 면적은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양분하여 자그마치 550제곱킬로미터나 되는데 전체를 구경하려면 아마 일주일로도 모자랄거다. 275개의 폭포들 중 단연코 으뜸은 녀석이 살고있는 '악마의 목구멍'이라는 폭포다. 바로 오늘 내가 찾아갈 악마가 살고 있는 곳이다. 현재는 공원 전체가 자연보존구역으로 지정되어 양국이 특별관리하고 있다고 한다.

▲이과수 전망대에서 서동필 작가


공원 입구에서 하차하자 인솔가이드인 안드레가 지천에 깔린 너구리들과 원숭이들을 조심하라한다. 하긴 밀림형태의 자연상태 공원인데 들짐승, 날짐승, 산짐승이 있다는 건 당연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몇 마리의 너구리가 우릴 알아보고 조용히 다가와 가방을 뒤진다. 지들도 노하우가 쌓였는지 잠시 정지하는 사진찍는 틈새를 노린다. 관광객들이 던져주는 음식에 익숙해져있어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아 그런다한다. 무심코 행한 인간들의 어리석은 행동들이 그들의 생태습관까지 바꿔놓아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그러나 귀여워 보이는 녀석들도 알고보면 사나운 짐승들이다. 자칫 온정을 펼쳐주다 상대방 수가 틀어지면 당신을 물 수도 있다. 안드레가 실제 그런 사례들도 설파해주었다. 배고픈 너구리와 원숭이에게 과자부스러기 던져주는 동정심은 버려야한다.

정해진 길을 따라 공원의 한 중심으로 걸어 들어간다. 저 멀리 보이는 이과수 폭포의 하얀 장관과 빽빽히 뻗어있는 녹색밀림, 푸르름에 눈부신 파란하늘이 단숨에 피로를 날려버린다. 발걸음을 더욱 재촉한다. 기다려라! 널 보기위해 먼길을 마다않고 달려왔다. 점차 비누거품처럼 부풀어오르는 폭포수와, 귓전을 강타하는 폭포음이 눈과 귀를 자극시키기 시작한다. 저 어딘가에 악마가 살고 있으리라! '악마의 목구멍'이라 불리우는 폭포는 이과수 폭포의 심장과도 같다. 가까이 갈수록 마치 이과수가 숨을 쉬고 있는 것 마냥 심장소리가 또렷히 들려왔고, 우린 한 걸음 한 걸음씩 떨리는 마음으로 그 심장 박동의 진원지를 확인하려, 자연의 괴물체를 확인하려 녀석 곁으로 다가섰다.

세계 3대 폭포중 하나라 불리우는 이과수폭포는 높이 82미터, 너비 4km로 나이아가라 폭포의 4배 수준에 달한다. 그 중 '악마의 목구멍'은 초당 250만톤의 물줄기를 발산하는 거대 폭포로서 다른 폭포들에 비해 그 규모와 크기가 가히 압도적이다. 일찍이 브라질 인디언들은 이 폭포를 보고 소용돌이 치는 물줄기속으로 빨려 들어갈것 같다 했으며, 아르헨티나인들은 상공에서 바라볼시 악마의 목구멍을 닮았다 했다. 실제 브라질 인디언들과 아르헨티나인들이 이렇게 명명한 '악마의 목구멍' 속으로 뛰어들어 생을 마감하는 이들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단다. 십 초 이상 소용돌이치는 폭포를 바라보고 있으면 폭포가 마치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기분이 들어 자신도 모르게 뛰어든단다. 안드레의 설명을 들으니 목 뒤가 더 오싹해지며 묘한 흥분이 몰려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실체를 확인하고자 하는 용기는 배가가 됐다. 잘 왔다. 전세계인들은 나처럼 '악마의 목구멍'을 눈으로 직접 확인하기 위해 오늘도 이곳 이과수는 관광객들로 발디딜 틈이 없었다.

오늘은 일정상 보트를 타고 악마의 발톱까지만 가기로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강 아래까지 내려간 뒤, 다시 보트를 타고 폭포 아래까지 가서 물벼락을 맞는 체험이다. 가이드 안드레는 발톱 부위에서 폭포세례를 맞을때 악마의 피로 흠뻑 적셔질거라 했다. 우의착용이 필수였지만 그저 요식행위에 불가할거라 했다. 덧붙여 축구에 소질이 있는 그는 브라질 보트 기사들에게 인기가 있어 한번에 끝날 체험을 세번까지 시켜줄거라 했다. 여러모로 가이드를 잘 둔듯 싶다. 보트엔 약 스무명이 승선했다. 얼굴 색도, 피부 색도 각각 다른 여기서 처음 본 관광객들이다. 우린 우의를 뒤집어 쓰고 서로서로 어깨동무로 인간띠를 이룬 뒤 만반의 채비를 갖추었다. 그래, 악마야, 어디 한 번 우리랑 자웅을 겨뤄보자. 출발 준비가 모두 끝났다.

▲악마의 발톱 폭포


보트가 굉음을 내며 달리기 시작한다. 삼바리듬에 몸을 섞은 브라질 보트 기사는 중앙선이 없는 이과수 강 도로를 갈짓자로 내달린다. 신호도 없고, 교통경찰도 없고, 단속기도 없다. 그저 목적지만 있을뿐이다. 바이킹을 타고 비포장도로를 달리면 이런 기분일까? 거센 물살과 바닥 암석들때문에 쏠림을 예측할수도 없고 대비할수도 없다. 그저 기사가 운전하는 대로, 보트가 가는대로 내 몸을 기증할뿐! 3km의 거리를 그렇게 시속 60km로 내달리는데 두려움도 좋고 흥분도 좋다. 내가 살아 있음을 느낀 순간이었다. 이럴땐 원초적인 게 가장 좋다. 덜컹거릴때마다 곡성과 괴성을 눈치보지않고 내뱉는다. 이미 몸은 젖은지 오래. 거친 물살에 물보라가 연신 보트 속으로 파고든다. 강주변의 기암절벽과 수려한 산세를 보고 감탄따위에 젖어 있을 자는 지금 여기에 아무도 없다. 당신에게 단 1초의 틈도 주지 않기 때문이다. 겨를이 없다는 표현이 딱 맞겠다.

필경 보트 바닥에 기사들의 제3의 눈이 달렸던지, 아니면 cctv라도 달려있는게 분명하다. 그러지 않고서는 드러나있지 않은 수중바위들을 요리조리피해 어쩌면 그리도 빨리 달릴수 있을까? 암초와 보트가 부딪치기라도 하는 날엔 모두 물고기밥 신세가 되는데 그럴 걱정은 진즉 접어뒀어야 됐다. 금새 악마의 발톱 부위에 도달했다. 보트기사는 박자를 세는가 싶더니 가차없이 보트머리를 폭포수 아래로 집어 넣었다. 우리 모두는 겁에 질려 환성과 비명이 섞인듯한 고함을 질렀고 악마는 우리를 격하게 환영했다. 녀석이 이 때를 노리고 가늠할수 없는 물줄기 세기와 량으로 모두를 강타했다. 한 방울이라도 덜 맞으려 우의를 부여잡고 보트바닥에 코를 박아보지만 피할수는 없는 일! 악마는 시간이 흐를수록 그의 심장에서 더더욱 강한 동맥을 뿜어냈다.

보트기사는 악마의 발톱 밑에서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며 물벼락 세례를 3번이나 더 경험하게 해주었다. 흠뻑 젖은 몸이건만 기분은 가히 나쁘지 않았다. 아니, 좋았다. 악마와의 첫대면은 그렇게 끝이 났다. 두려웠고 걱정됐지만 첫인상은 되려 좋게 다가왔다.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는 듯했다. 태어나 뒤통수를 가장 많이 맞은 날이었다. 돌아오는길, 우리의 환호성이 세면 세질수록 보트기사는 마치 고삐풀린 야생마처럼 초원을 미친 듯 곡예운전을 했다. 엄청난 속도와 회전량에 다들 함성을 외치며 즐거워했고, 그 후로도 계속 천국과 지옥을 오가며 이과수 강과의 혈투를 했다. 물살이 약한 곳에 도달하자 기사는 그제서야 속도를 낮추었다. 고개를 들어 주변을 돌아보니 주변의 풍광들이 눈에 들어왔다. 이 아름다운 곳에 내가 있음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이 모두 잘난 가이드를 둔 덕분이다. 오늘은 악마를 아래에서 봤다면 내일은 위에서 내려다 볼거다. 악마의 목구멍 속에 대체 목젖은 있기나 하는걸까?

날이 바뀌고 곧장 다시 이과수 국립공원으로 향했다. 브라질과 아르헨티나의 국경지대에 위치해 있다보니 발톱은 브라질에서, 목구멍은 아르헨티나에서만 감상할수 있다. 그래서 본의 아니게 두번의 월경을 감행했다. 코끼리열차를 타고 강기슭에서 하차한뒤 강위로 난 왕복 2.2km의 철길을 걷는다. 길은 절벽앞까지 이어져 있으며 폭포의 위용을 바로 눈 앞에서 감상할 수 있다. 철길은 1미터 폭으로 좌우측 통행로가 붙어있어 줄지어 오가는 사람들 구경하는 재미도 한몫한다. 강속에서는 이 구역의 토종대감이라 할 수 있는 대왕메기가 방문을 반기며 유유히 헤엄치고 있었다. 어제와 달리 폭포 위쪽은 물살이 잔잔했다. 이 강의 끝에 낭떠러지가 있다니 실로 자연의 산물이 놀라웠다. 우기의 날씨는 우리 일행 바로 뒤에서만 따라오지 절대 앞지르질 않았다. 하늘도, 자연도, 그리고 악마 당사자도 모두가 우리 편인 듯했다.

드디어 악마의 목구멍에 도착했다. 듣던 바와같이 어마어마한 장관에 입을 다물 수 없었다. 귓전을 때리는 굉음과 물보라가 우리에게 곧바로 휘몰아쳤다. 악마는 거대한 입을 벌리고 모든 물줄기를 소용돌이치며 블랙홀처럼 빨아들였다. 마치 우주의 나선운하를 눈 앞에서 보는 듯했다. 계속 그 중심을 바라보니 정말처럼 마치 나도 함께 빨려가는 기분이 들어 시선을 재빨리 돌렸다. 이 순간 두려우면서도 엄숙해졌다. 81미터를 낙하하는 이과수의 혈류는 악마의 심장속에서 펌프질 당하며 일곱색깔 무지개를 상공에 띄워주었다. 그 색깔이 얼마나 진하고 화려한지 생전 그렇게 아름다운 무지개는 첨이었다. 수백억년 전 지각변동으로 인해 태어난 악마는 연약한 인간에겐 범접할 수 없는 거대한 신과도 같아보였다. 그렇게 난 오늘 악마의 목구멍에서 악마를 만났다. 악마는 공포스러우면서도 장엄한 존재였지만, 한편으론 오랜 친구처럼 따뜻해 보이기도 했다. 첫만남의 기념으로 녀석과 사진을 남겼다. 악마는 스스럼없이 곁을 내주며 그렇게 내게 다가왔다.

▲악마의 목구멍이 선사한 무지개


이 세상에 나쁜 악마가 있다면 분명 착한 악마도 존재할것이다. 무시무시해보이지만 인간을 곁에두고 자신을 전시하며 인간에게 많은 볼거리를 제공해주는 악마! 자연이 선물해 준 자신을 뽐내지 않고 과시하지 않으며 낭비하지 않는 악마! 이런 악마가 어디 있을가 싶다. 그런 너의 희생으로 인해 이곳 이과수는 세계의 3대폭포가 되어 그 위용을 뽐내고 있다. 겸손함과 위대함, 배려심을 가르쳐준 넌 이제 더이상 내게있어 악마가 아니다. 앞으로도 억겁의 세월을 더 버티며 자리를 지키고 있을 우리들의 진정한 영웅이다. 매년 지각변동으로 인해 폭포의 높이가 8미리씩 낮아지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 언젠가는 너의 모습도 볼수 없게 될 날이 찾아올 것이다. 오늘 바라본 너의 굉음은 인간세계에 대한 자연의 경고이며, 물보라는 10년을 젊게 해준다는 선물이며, 출렁이는 바람은 객들과 인사나누는 너의 스킨쉽이었으니. 너로 인해 행복한 이틀이었고 잊지못할 추억이었다. 언제쯤 널 다시 보러 올 수 있을까? 벌써부터 그날이 설레어진다. 지금부터 내 마음속에서 너의 이름을 새로 짓고 앞으로는 이렇게 부를까한다.


'악마의 목구멍'을 지우고...

'천사의 기도' 라 부를게.

잘 있어... 안녕!

▲ 페루 마추픽추 정상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서동필 작가


◆ 서동필작가 프로필 ◆
1975년 12월 10일 전남 승주군 별량면 출생(현 전남 순천시)
1994년 순천 매산고 졸업
1998년 순천대 ROTC 36기 소위 임관
2004년 육군 대위 전역
2008년 (주)리싸이클시티 가맹점 대표
2018년 사단법인 한국여행작가학교 수료
2019년 은평지역신문 참여기자
2019년 작가 등단 ‘나는 751210 이라고 해’ 첫 번째 에세이집 발간
2020년 은평 새마을 청년 지도자 협의회 활동
2020년 10월 '뒤돌아보니 인생은 찰나의 순간이더라' 두 번째 에세이집 발간
2020년 제10회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 입선
2021년 제11회 대한민국 독도문예대전 입선

저작권자 ⓒ 동작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