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감상] 서예와 번역의 SNS 콜라보(22) - 한밤중 배 위에서

미 시카고의 서예가 지효(芝曉)와 서울의 번역가 이로미가 만나다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2.01.20 00:26 의견 0


한밤중 배 위에서 / 장계

달 뜨자 까마귀 울고 하늘에 서리 가득하다
가까이 단풍 보다가
멀리 고깃배 등불 보다가
깜박깜박 시름 속에
고소성 밖 한산사 종소리 귀에 닿다


楓橋夜泊 / 張繼

月落烏啼霜滿天 월락오제상만천
江楓漁火對愁眠 강풍어화대수면
姑蘇城外寒山寺 고소성외한산사
夜半鐘聲到客船 야반종성도객선

[해설과 풀이]

제목 풍교야박(楓橋夜泊)은 '풍교에서 배를 타고 밤을 지내다'의 뜻
張繼(장계)는 중국 당나라 때 시인
楓橋(풍교)는 江蘇省(강소성) 蘇州(소주)의 서쪽 교외에 있는 다리. 姑蘇城(고소성은) 소주에 있는 성이고, 寒山寺(한산사)는 소주 楓橋鎭(풍교진)에 있는 사찰

첫 줄 月落(월락)은 '달이 떨어지다'의 뜻. 거의 모든 사람들이 '달이 지다'로 해석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마지막 줄의 夜半야반(한밤중)과 맞지 않습니다. 저는 '하늘에 달이 떨어지다'로 해석해 거꾸로 '달이 뜨다'로 옮겼습니다. ㅎㅎ 이제 월락과 야반이 어울립니다.

사실 이 시를 처음 접하면서… 월락… 달이 져 어둔 밤에… 새벽이거나 달 밝은 중이면 몰라도… 까마귀 깨어나 울까? 하늘과 땅에 서리 기운 보일까? 단풍나무 색깔은 보일까? 그런 의문이 일었죠. 그러다가 야반을 살려 월락을 '달 뜨다' 쪽으로 풀이할 순 없을까 고민을 했던 것이고요.

이 시는 장씨가 57세에 과거에 세 번이나 떨어져 시름 속 귀가 길에 읊은 시라는데, 그 심경이 말이 아니었을 거란 분석입니다. 그래서 생각이 비비 꼬여 시어를 늘어놓은 게 아닐까… 특히 월락, 야반의 해석이 분분합니다. 그 시름이 지독하여 안 보이는 걸 보고 있고, 안 들리는 걸 듣고 있다고…

하지만 난 장씨가 그리 약한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처량함이야 당연하지만 그리 기죽어 있는 건 아니라고… 시름을 이겨내느라 애쓰는 중에 갑자기 눈에 띈 하늘의 달을 보고, 달 밝아 깨어나 우는 까마귀소리를 듣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찬 서리 기운을 느끼고, 강가의 단풍나무에 달빛 어리는 걸 보고, 그러다가 멀리 고깃배 등불 깜박거리는 걸 보고, 그럭저럭 밤을 지새면서 잠결에 종소리를 듣고… 장씨의 감각들이 시름에 전혀 죽지 않고 생생하게 깨어나 오히려 시름을 이겨내고 있구나! 그리 생각이 든 것이죠. 혹시, 그간 천오백 년의 독자들이 장씨를 처량함 쪽으로 너무 몰아부친 건 아닐까 하는 의문도 들었구요.

둘째 줄 한 줄은 과감하게 가까이~ 멀리~ 깜박깜박~ 없는 말 보태가며 우리말 세 줄(江楓/漁火/對愁眠)로 옮겼습니다.

셋째 줄에다간 넷째 줄의 종소리(鐘聲)를 끌어다붙였고…

그리고 넷째 줄의 夜半(야반)과 客船(객선)은 제목에서도 충분히 느낄 수 있으니 빼버렸고, 夜半鐘聲到客船(한밤중 종소리가 객선에 닿다)를 간단히 '귀에 닿다'로 옮겼습니다. 아울러 셋째 줄과 넷째 줄을 아예 합쳐버렸으니…

혹시라도 장씨가 화(?)를 내지 않을까 하여 번역의 자초지종을 적어놓습니다.

저작권자 ⓒ 동작경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