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병일기, 립스틱 하우스(22) - 립스틱 윈도우

한 요양병원 시한부 소녀 환자가 입술에 그리던 희망의 립스틱… 정한일 작가가 죽음을 앞둔 삶의 의미를 “립스틱 하우스”에 담아낸다. 제 2부, 6월 6일부터 8월 13일까지의 간병일기.

동작경제신문 승인 2022.01.20 00:18 | 최종 수정 2022.07.26 10:05 의견 0

21. 6월 6일 립스틱 하우스 첫날
22. 6월 7일 립스틱 윈도우
23. 6월 8일 늙기란 미움을 사는 일
24. 6월 11일 간병 10계명
25. 6월 12일 잠을 설치다
26. 6월 13일 립스틱 모닝
27. 6월 14일 휠체어 예찬
28. 6월 18일 삶이란 차츰씩 방향을 잃어가는 것
29. 6월 20일 죽어감에 대하여
30. 6월 22일 죽어감에 대하여 2
31. 6월 23일 걷기와 숨쉬기
32. 6월 24일 지금 안다고 해서 미래가 해결되는 건 아니다
33. 6월 25일 립스틱 유니버스
34. 6월 26일 약에 대하여
35. 6월 28일 대신 숨 쉴 수는 없는 노릇
36. 6월 29일 요양등급신청을 하면서
37. 6월 29일 조신(操身)
38. 7월 4일 베갯잇꽃
39. 7월 5일 대화의 기술
40. 7월 7일 립스틱 도어
41. 7월 9일 립스틱 딕셔너리
42. 7월 10일 사람은 생각하는 동물이다
43. 7월 11일 혼(魂)과 백(魄)
44. 7월 16일 죽음과 삶
45. 7월 17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46. 7월 20일 아닌 밤중에
47. 7월 31일 립스틱 모닝 2
48. 8월 1일 오늘을 사는 게 인생이다
49. 8월 3일 일상(日常)
50. 8월 12일 장조림과 오이지
51. 8월 13일 운동과 오락, 습관에 대하여

립스틱 윈도우

거실 한켠 낡은 장식장 옆에 붙여놓은 전동 침대… 침대 위에선 현관이 보이지 않는다. 문간방 창문만 비스듬히 보인다.

온종일 쳐다봐도 보이지 않는 현관… 볼 때마다 혹은 보지 않아도 늘 거기에 있는 창…

현관을 통해 들어오긴 했지만 다시 나갈 엄두가 나지 않는… 립스틱으로 그려놓은 창은 사람이 빠져나갈 수 없는 창이다. 그리로 드나드는 건 바람뿐… 바람을 타고 녹음이 흔들리고, 간간이 사람들의 목소리가 넘어오다 창턱에 걸린다. 생기가 있어 돌아다니는 것들은 모두 창밖으로 사라진다. 만사가 창밖에 있다.

'저기가 립스틱 바깥이로구나!'

온종일 아버지 곁을 지키다보면 드는 생각이다. 무슨 소리야? 아직 생기가 남았고, 생기를 더 찾고자 이곳에 왔는데… 갑자기 아버님께 죄송하단 생각에 당황해 급히 권유한다.

'립스틱 바깥에 나가볼까요?'

아니,

"아버지, 휠체어 한번 타실래요? 타고 동네 한 바퀴 돌아보시죠. 초여름이라 날이 좋아요. 어떠세요?"

듬성듬성 자란 흰 머리칼과 미간 사이 이맛살 위에까지 솟은 흰 눈썹, 코밑 턱밑의 꼬실한 흰 수염… 각질이 흘러내리는 두 볼과 귓바퀴… 눈이 감긴 채 고개가 연신 흔들린다.

"아버지, 어때요?"

“그러마!”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진 건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몇 시간이 지나도록 속을 달래지 못한 오후 나절… 전전반측(輾轉反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해 아버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어떻게 해?"

"휠체어 타고 밖에 한번 나가보세요."

립스틱 바깥으로 나갔다.

'보세요, 빨갛게 립스틱 바른 여자들이 얼마나 예뻐요!'

"아버지도 이제 잘 차려입고 나오세요. 바지도 잘 입고, 윗도리도 잘 입고, 양말에 신발, 필요하면 모자도 하나 쓰죠. 휠체어를 타면 어디든 갈 수 있어요. 차에 옮겨타기만 하면, 아주 멀리 아버지가 좋아하는 낚시도 다닐 수 있고요. 어때요, 동네 한 바퀴 도니까 좋으시죠?"

'천하주유(天下周遊)의 열망을 품고 계획을 세워 실천으로 옮겨볼까요? 립스틱을 바르고 다시 세상에 나서보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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